[영화리뷰] 수상하고 이상한 영화 ‘곡성’ …악은 무엇인가

곡성2‘곡성’은 한마디로 이상한 영화다. 나홍진 감독의 전작 ‘추격자’나 ‘황해’와 비교하자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처절함은 비슷하다. 하지만 그 주제의 특이함 때문인지 말로 설명하기 힘든 기묘한 영화가 됐다.

감독의 전작 ‘추격자’나 ‘황해’ 그리고 이번작 ‘곡성’은 투박함 속에 숨은 치밀한 전개 그리고 각 캐릭터간의 긴박한 대립이라는 측면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그 형태만큼은 전작과 크게 다르다. 전작 2 편은 ‘현실적’이다. 굉장히 불편하지만 현실에서 있을 법한, 아니 지금껏 빈번히 일어나온 일들을 끌어와 그 속에서 인물 간의 대립에 집중한다. 영화가 현실적이다 보니 관객들도 부담스럽지만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없다.

반면 ‘곡성’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곡성’이란 한정된 공간 속에 영적, 종교적, 초자연적 미스테리를 녹여놓다 보니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굉장히 어렵다. ‘곡성’의 주요 키워드를 바탕으로 영화를 되집어 보자(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으니 유의하시길)

●피해자의 시점에서 보는 영화

나홍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전작이 가해자의 시점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피해자의 시각에 담겨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화두이자 주제다. 이 영화의 쟁점 중 하나는 피해자가 되는 이유이다. 영화에서 무속인 일광(황정민)의 대사 두 마디는 이를 아주 집약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광은 딸 효진이를 걱정하는 주인공 종구(곽도원)에게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낚시할 때 무엇이 딸려나올지 아는가? 떡밥을 던진 것이고, 자네 딸은 그것을 그냥 문 것이다. 무엇이 딸려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그리고 또 이렇게 말한다. “아주 제대로(떡밥을) 물었구나”. 영화 속에서 이 말을 쉽게 풀면 피해자는 특별한 이유 때문에 피해자가 되지 않는다. 그냥 재수가 없다 보니, 특별한 이유 없이, 어쩌다 보니 피해자가 된다. 결코 피의자가 피해자를 특정해 노린게 아니다.

●도대체 왜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는 도저히 자신의 처지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 억울해 진다. 화가 난다. ‘왜?’라는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하니 갈수록 무서워진다. 영화는 외지인이 낚시에 떡밥을 끼우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어찌보면 생뚱맞은 이 오프닝은 영화의 전체 주제를 아주 잘 요약하고 있다.

마을은 미쳐가는데 현대 문명(의학, 경찰 등)은 이에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무기력하기 그지 없다. 곡성의 진짜 공포는 여기서 나온다. 평범한 우리들이 느끼는 ‘절망감’과 ‘나약함’은 ‘곡성’이 무서운 진짜 이유다. 영화는 너무도 불친절하게도 끝까지 왜라는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 악이 왜 판치는지, 왜 사람은 죽어나가는지, 왜 하필이면 주인공의 가족이 악에 희생되는지, 다음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등에 대해 전혀 답이 없다. 그렇다 보니 영화를 다 보고 나도 찜찜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악은 무엇인가?

‘곡성’은 상당히 오컬트하다.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악의 존재와 근원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한다. 기독교와 굿과 무당으로 대변되는 샤머니즘을 통해 악이 무엇인지, 왜 ‘곡성’에 퍼지는지, 과연 그 악이란 것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런데 관객은 여기서 혼란에 빠진다. 악을 워낙 모호하게 표현하다 보니 영화가 끝나는 순간 바로 직전까지도 과연 누가 악인지, 왜 악인지 의심스럽다. 사실 이 영화는 의심해서 악이 되는 영화다.

의심해서, 그래서 그 의심이 깊어지고 결국 그것이 광기가 돼 모든 비극이 생긴다. 악이라고 믿고 악으로 정의해 단죄하다 보니 악이 아니었던 것들도 정말 악이 되고 만다.

영화 마지막이 되면 누가 악이었는지 누가 선이었는지 겨우 구분된다. 하지만 그 선 조차 덜 악할 뿐 우리가 흔히 아는 절대선과는 다르다. 영화는 결국 악이 승리하는 엔딩이 되고 마는데 이는 사람들이 선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에 대한 확신이 없다보니(사실 이것은 선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우리 때문이다),계속 의심하다 보니 악은 이를 파고 들어 승리한다. 결국 곡성은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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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성’역시 전작의 김윤석이나 하정우가 그랬듯 분량과 무관하게 최상의 연기를 뽑아낸 배우들의 열연에 매혹된다. 그간 야비한 악역에서 빼어난 연기력을 뽐낸 곽도원은 한없이 부드럽고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시작해 딸을 살리기 위해 점점 광기에 파묻히는 종구 역을 최고의 연기로 표현했다.

종구의 대칭점이자 영화의 또 다른 주연인 외지인을 연기한 쿠니무라 준은 다양한 표정 속에 선과 악을 오가는 다중성을 보이며 영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냈다. 한국 최고의 스타파워를 자랑하는 황정민은 출연분량 면에서는 조연에 속하지만 필요할 때마다 그 에너지를 드러내면서 영화의 균형을 맞춘다. 워낙 다작 배우다 보니 연기가 비슷하다는 지적도 심심치 않게 나왔지만. 굿판 장면만 봐도 황정민이 각광받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 영화 최고의 발견은 천우희라는 무녀와 종구의 딸 효진으로 출연한 아역 김환희다. 천우희는 단 몇장면에만 등장하지만 모든 씬(Scene)을 지배한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카리스마는 쿠니무라 준이나 황정민의 대척점에 서고도 전혀 그 기운이 눌리지 않는다. 써니에서 시작해 한공주로 가다듬은 그녀의 연기력은 곡성에서 그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한국영화계에 전도연 못지 않은 여배우가 탄생한 순간이다. 김환희 양의 연기는 그야말로 아역 배우가 접근하기 힘든 선을 모두 넘어, 엑소시스트에서나 보이던 공포감에 근접하고 있다.

‘곡성’이 워낙 화제다 보니 지금 웹상에서는 곡성의 스포일러가 넘쳐난다. 아마 독자 중 상당수는 이미 이 스포일러에 당해 ‘영화를 봐야하나’라는 의심 혹은 ‘이미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있을 것이다.

하지만 ‘곡성’은 다행히 ‘스포일러 프리’다. ‘절름발이가 범인이다(유쥬얼 서스팩트)’나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래(식스 센스)’와 같이 스포일러 한방에 영화의 모든 것이 걸려있는 반전 영화가 아니다.

‘곡성’은 영화 속 외지인의 말처럼 ‘보고 싶은 것만’보이는 묘한 영화다. 한번 볼 때 못봤던 것이 두번째는 보이는가 하면 처음 느꼈던 느낌이 두번째는 싸악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다가온다. 볼 때마다 새롭게,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 ‘곡성’의 진짜 매력이다.

‘곡성’은 아마도 흥행 면에서 기대치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영화 속에 워낙 많은 상징과 의미가 숨어 있다 보니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탓이다. 그의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이라면 ‘걸작’이 될 것이요 찜찜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는 관객들에게는 ‘망작’일 수도 있는 영화다. 단 극장보다는 DVD를 포함한 2차 사이클에서는 더 많을 호응을 얻을 수 있다. 한마디로 보는 맛이 있다는 이야기다. ‘곡성’은 5월 19일 LA CGV극장을 시작으로 6월 2일을 기해 미 전역에서 개봉한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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