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감독 영화는 그동안 대중들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일이 많았다. ‘아가씨’에서 보인 박찬욱의 변화가, ‘박찬욱 마니아’와 일반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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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스틸컷 [제공=CJ엔터테인먼트] |
배경은 1930년대 조선과 일본. 박 감독의 첫 시대극이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 런던과 근교가 배경이었던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사라 워터스)를 각색한 작품이다. ‘미장센 대가’의 영화답게 ‘아가씨’는 시작부터 볼거리를 늘어놓는다. 동서양의 양식이 조화된 대저택과 정원, 주인공의 의상, 분장까지. 미술적인 요소들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그 위에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차곡차곡 쌓인다. 1~3부로 나누어진 영화는 등장인물의 시점에 따라 사건을 달리 볼 수 있도록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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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스틸컷 [제공=CJ엔터테인먼트] |
1부에서는 막대한 부를 상속받은 일본 귀족 아가씨(김민희)와 결혼해 재산을 가로채려는 백작(하정우), 그리고 그에게 고용돼 아가씨를 꼬이는 데 동참하는 하녀(김태리)의 이야기가 서술된다.
이어진 2부에서는 같은 이야기가 시점을 달리해 반복된다. 그러자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변화한다. 1, 2부에서 거짓말에 속고, 다시 또 속이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입체적으로 쌓아 올려진 캐릭터들은 3부에 다다라 본성을 드러낸다. 한쪽은 해피엔딩으로, 한쪽은 파멸로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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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스틸컷 [제공=CJ엔터테인먼트] |
박찬욱 감독은 25일 진행된 국내 시사회에서 “각 인물의 시점샷과 눈동자의 움직임을 통해 시선들을 표현했다”라며 “눈이 마주쳤다 회피하고, 회피했다가 다시 돌아보는 인물들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보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 감독의 연출 의도 아래서 시점마다 순진함과 영악함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두 여배우의 연기도 대단하다. 최근 한국 영화계가 가장 주목하는 여배우인 김민희와 1500:1의 경쟁률을 뚫고 ‘아가씨’에 캐스팅된 신인 김태리의 호흡도 좋다.
이들은 수위 높은 정사 장면도 소화해내며 영화에 관능적인 색채도 더했다. 일각에서는 “남성의 관음적인 시선으로 여성들의 섹스 장면을 묘사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어떤 장면 때문인지 몰라도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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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가씨’ 스틸컷 [제공=CJ엔터테인먼트] |
논란을 차치하고서라도 ‘아가씨’의 동성애 코드는 큰 무리 없이 녹아든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이들이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유난히 부자연스럽거나 유달리 특별해 보이지 않고 물 흐르듯이 그려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박 감독의 전작에 비해 광기나 잔인함은 덜하다. ‘아가씨’에서 광기를 드러내는 인물은 아가씨의 후견인(조진웅)이다. 변태적인 욕망을 가졌지만 그 광기는 노쇠한 육체 속에 뒤틀려져 존재할 뿐이다. 잔인함이 표출되는 장면도 차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원작 소설 ‘핑거스미스’를 읽은 관객이라면 영화가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전을 미리 알고 있는데다가, 소설과 영화가 갈라지는 부분도 그렇게 놀랍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박 감독의 말대로 시점샷을 따라가면서 영화를 해석하는 재미를 찾아보길 권한다.
지난 22일 폐막한 칸국제영화제에서 경쟁부문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아가씨’의 미술적인 성취는 류성희 미술감독에게 한국인 최초 벌칸상 수상을 안겨줬다. 해외 판매도 날개 돋힌 듯 이뤄졌다.
오는 6월1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 144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