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중허냐고~”…‘유행어’ 알면 ‘영화 흥행’ 보인다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관객수나 매출액 말고도 영화 흥행의 또 다른 척도가 있다. 발 없이도 천 리까지 간다는 ‘말’이다. 그 중에서도 ‘유행어’의 탄생은 영화가 입소문을 타는 데 결정적이다. 영화에서 나온 유행어는 스크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브라운관, SNS까지 점령한다. 강력한 체감 흥행 척도다.

유행어를 알면 흥행이 보이고, 유행어가 히트를 치는 이유를 알면 사회상도 보인다.

흥행 영화에 유행어 있다= 지난해 재벌 3세 조태오의 “어이가 없네”(베테랑), 무식한 조폭 안상구의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내부자들)이라는 유행어가 대중문화계를 휩쓸었다. 영화도 각각 1341만, 707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 대박을 쳤다. 


올해는 ‘곡성’이 바통을 넘겨받았다. “뭣이 중허냐고”, “미끼를 물어분 것이여” 하는 맛깔스런 대사가 관객들의 뇌리에 남아 여러 형태로 패러디 되고 있다. ‘곡성’은 개봉 10일만에 5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흥행 순항 중이다.

흥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유행어 하나 없는 영화는 드물다. 15년 전 818만 관객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웠던 영화 ‘친구’(2001)에서의 “니가 가라 하와이”, “친구 아이가”는 지금까지도 제일로 꼽히는 명대사이자, 유행어다.

525만 관객을 동원한 ‘살인의 추억’(2003) 속 “밥은 먹고 다니냐”, ‘건축학개론’(2012, 411만)에서의 “납득이 안 돼요 납득이”, ‘범죄와의 전쟁’(2012, 472만)의 “살아있네!” 등의 대사들이 유행어의 계보를 이었다.

역대 한국영화 흥행 1위 기록(1761만)을 세운 ‘명량’(2014)에서도 유행어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전 국민이 충무공 이순신의 위인전으로 먼저 읽고 알던 말이지만 영화로 인해 숨결을 얻어 초강력 유행어가 됐다.

유행어는 사회의 거울= ‘명량’의 명대사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가 유행한 이유는 당시의 사회적 맥락과 무관치 않다.

‘명량’이 개봉한 2014년 여름, 한국 사회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출구 없는 무력감에 빠져 있었다. 이때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때로는 자신을 희생했던 위인 이순신이 영화에 등장했던 것. 그의 리더쉽을 묵직하게 다룬 ‘명량’은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특히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의 신념이 표현된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대사가 관객의 뇌리에 박혀 유행을 탔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유행어의 사회적 맥락에 대해 “관객이 평소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영화 속 대사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관객들은 쾌감을 느낀다”라며 “답답하거나 후련한 심정을 대변하는 대사가 유행어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박하사탕’(2000)에서 주인공이 기차 위에서 절규하며 내뱉었던 “나 돌아갈래”라는 대사는 순수했던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친구’에서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라며 학생을 체벌하는 교사의 말은 출신 성분 따지는 사회에 대한 관객의 공분을 자아냈다. ‘타짜’(2006)에서 도박판에 있는 여성이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고 자존심을 세우는 모습은 학벌 사회를 풍자한 통렬한 대사였다.

“짧고 강렬” 유행어의 조건= 유행어 중에는 사투리가 압도적으로 많다. 관객의 뇌리에 박히는 말은 그저 몇 글자의 단어 뿐만 아니라 ‘어투’ 이기 때문.

‘친구’에서의 “니가 가라 하와이”, “친구 아이가”도, ‘범죄와의 전쟁’(2012)에서의 “살아있네”도 ‘부산 사나이’ 들의 사투리였다. 


최근 유행한 ‘내부자들’의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 잔”도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인물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술 이름과 나라 이름을 혼동하고도 모르는 천진난만한 무식함도 웃음 포인트였지만, 찰진 사투리가 귀를 휘감았다. ‘곡성’의 “뭣이 중헌디”도, “자네는 미끼를 물어분 것이여”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다. 

정지욱 평론가는 “짧고 강한 인상을 남겨야 유행어가 된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평이한 언어보다는 사투리처럼 특징 있는 억양으로 한 대사가 훨씬 큰 반향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영화감독들이 유행어를 의도하고 대사나 장면을 만들지는 않을까. 정지욱 평론가는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면을 만들면서 그들끼리 키득키득 웃기는 하겠지만, 무엇이 유행어가 될 지는 예측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SNS 타고 ‘입소문’ 효과…코미디 단골 소재= 따라하고 싶은 말. 유행어의 본질이다. 유행어는 그 자체가 ‘입소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영화 속 대사가 유행어가 되면 그 자체가 화제가 되면서 영화를 안 본 관객을 극장으로 이끈다”라며 “순환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에는 SNS를 타고 유행어가 패러디에 패러디를 거듭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짤방(각종 이미지)’에 유행어를 붙여 공유하는 놀이 문화도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2003)에서 배우 송강호의 애드립으로 탄생했다는 대사 “밥은 먹고 다니냐”, ‘달콤한 인생’(2005)에서 김영철의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등은 짤방 단골 소재다. 또 유행어는 해쉬태그(특정 단어에 #를 붙여 주제별로 검색할 수 있게 하는 컴퓨터 코드)로도 SNS를 탄다. 


정지욱 평론가는 “영화의 대사나 장면 등의 요소는 대중에게 발표되는 시점부터 관객의 것이 된다”라며 “이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것은 관객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전통적으로는 유행어가 개그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KBS ‘개그콘서트’의 코너 ‘1대 1’에서는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이라는 대사를 변형한 “장난 나랑 지금 하냐”라는 새로운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코미디언들은 항상 대중의 코드를 예의주시하기 때문에 흥행 영화의 유행어를 살핀다”라며 “이는 영화 뿐만 아니라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등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말했다.

jinlee@heraldcorp.com

<한국영화 유행어 계보>

제목(연도) 유행어 관객수

친구(2001) “친구 아이가” “니가 가라 하와이” “내가 니 시다바리가” 818만

살인의 추억(2003) “밥은 먹고 다니냐” 525만

달콤한 인생(2005)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127만

타짜(2006) “나 이대 나온 여자야” 401만

건축학개론(2012) “납득이 안 돼요 납득이” 411만

범죄와의 전쟁(2012) “살아있네” 472만

신세계(2013) “드루와 드루와” 468만

명량(2014) “신에게는 아직 열두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1761만

베테랑(2015) “어이가 없네” 1341만

내부자들(2015)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 잔” 707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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