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맺기’ 소녀들의 성장통

16일 개봉 ‘우리들’

초등학교 4학년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피구를 하고 있다. 자기에게 공을 넘겨달라고 아우성이다. 아이들은 손을 뻗고, 여기를 봐 달라고 총총 뛰고, 나선다. 자기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외톨이인 선(최수인)은 일찌감치 공을 맞고 수비로 밀려났다. 멀뚱멀뚱 학급 친구들의 움직임을 바라만 보고 있다.

선은 분식집을 하는 엄마, 공장일로 바쁜 아빠, 돌봐줘야 하는 다섯살짜리 동생이 있는 열한살 아이다. 집에서는 의젓한 맏딸이지만, 선에게 누구보다 필요한 건 단 한 명의 또래 친구. 선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마냥 어렵기만 하다.

방학식 날 교실에 쓸쓸히 혼자 남아있던 선은 전학생 지아(선혜인)와 우연히 마주친다. 처음으로 마음 줄 친구를 찾았다. 선은 지아와 함께 실팔찌도 나누어 끼고,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며 아주 빨리 가까워진다. “엄마가 좋아, 지아가 좋아”라고 묻는 엄마의 물음에도 “지아요”라고 해맑게 대답한다.

지아는 이혼한 부모님 때문에 할머니 집에 맡겨져 지내는 쓸쓸한 아이다. 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이번 학교에서만큼은 친구들과 잘 지내보고 싶다. 할머니가 끌고 데려간 학원에 선이 없자 처음에는 “같이 다니자”고 졸라보지만, 이내 인기있는 친구 보라(이서연)와 친해지면서 선을 멀리하게 된다.

개학하고 선과 보라의 반에 배정받은 지아는 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16일 개봉을 앞둔 영화 ‘우리들’의 스틸컷. [사진제공=필라멘트픽쳐스]

‘우리들’은 아이의 시선으로 본 관계의 어려움을 담았다. 아이들은 한없이 미숙하기만 하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혼자가 되기 싫어 친구의 비밀을 들춰버리곤 한다. 그 비밀을 친구를 왕따시키는 데 사용하는 아이도 있다. 교실은 그 나이대 아이들의 속내만큼 복잡해져만 간다.

이 영화로 장편 연출 데뷔를 한 윤가은 감독은 앞서 단편 ‘콩나물’, ‘손님’ 등에서도 어린이들의 세계를 섬세하게 그렸다. ‘우리들’에서는 감독의 어린 시절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층 입체적인 모습의 4학년 교실이 완성됐다.

아이들의 감수성을 필터 없이 포착해낸 비결은 윤 감독의 독특한 연출법이다. ‘우리들’에 출연한 어린 배우들에게는 시나리오가 주어지지 않았다. 배우들은 촬영 전 3개월여 간 진행된 리허설에서 상황극으로 영화 내용을 익혔다.

윤 감독은 “촬영에 들어가서는 매 장면마다 상황을 알려줘 자연스런 연기를 끌어냈다”라며 “정말 필요할 때만 ‘쪽대본’ 형식으로 상황과 대사를 적어 배우에게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아이들의 대사와 행동은 순수함과 미숙함 그 자체다. “왜 나한테 그러는데”, “너가 먼저 그랬잖아”, “내가 뭘”, “그래서 어쩌라고” 같이 직설적인 대사가 쏟아진다. 자신을 방어하는 데 서툴러서 화살을 남에게 돌리는, 그래서 순수함이 드러나는 모습들이 그대로 담겼다.

‘은교’, ‘4등’ 등을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이같은 연출법에 대해 “아이들의 연기에 무슨 마술을 부린 걸까”라며 감탄하기도 했다.

엄청난 제작비와 톱스타들을 앞세운 블록버스터가 쏟아지는 6월이지만 ‘우리들’은 가장 주목할만한 수작임에 틀림없다. 언론시사회에도 유례없는 박수가 쏟아져나왔다. 국내에서는 16일 개봉한다. 전체관람가. 94분.

이세진 기자/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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