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로코, 백마탄 왕자는 없다

‘또 오해영’ 음향감독 역할 에릭
‘공심이’ 변호사 역할 남궁민 등
금수저와는 거리먼 전문직 종사자
완벽男 타이틀 대신 초능력 보유
보호받고자 하는 여성심리 자극
너무 평범한 女優캐릭터는 안변해

‘백마 탄 왕자님’과 ‘캔디’ 여주인공은 로맨틱코미디(이하 로코) 물의 고정불변의 법칙이었다. 돈 많고 잘 생긴, 모든 것이 완벽한 백마 탄 왕자님은 시대를 초월해 등장했다. 주변에선 ‘왜 하필 그 여자냐’고 말하지만 남자 주인공은 망가지기를 거듭하는 1% 부족한 여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진다. 헌데 요즘 ‘로코’는 조금 다르다. tvN ‘또 오해영’의 에릭과 SBS ‘미녀 공심이’ 남궁민은 어딜 봐도 완벽한 백마 탄 왕자님과는 거리가 멀다. ‘로코’ 남자 주인공들이 변하고 있다.

SBS‘ 미녀 공심이’ 와 tvN‘ 또! 오해영’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고 있는 남궁민(왼쪽)과 에릭. [사진제공=CJ E&M·SBS 제공]

▶재벌 2세는 이제 그만=‘또 오해영’에서 에릭이 맡은 박도경은 음향감독이다.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의사나 변호사 등 이른바 ‘사’자 들어가는 직업이 아니다. 소리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극도로 예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주변을 피곤하게 만든다. 재벌 2세나 3세도 아니다. 오히려 도경의 엄마는 한탕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자식에게 손을 벌리거나 돈 때문에 남자와 만나기도 한다. 돈과 출세에 눈이 멀어 아들 앞길을 막는 엄마다.

남궁민(안단테 역)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변호사이긴 하지만 낮에는 인권 변호사로 무료 법률 자문을, 밤에는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하고 있다. 사는 집은 ‘또 오해영’의 도경만도 못하다. 자기 집이 없어 월세를 전전한다. 기거하던 집 마저 월세가 100% 프로 인상돼 여자 주인공 공심이네 집 옥탑방에 세 들어 살게 된다. 심지어 아버지는 미스터리에 싸인 인물로 특별한 직업이나 거처가 공개되지 않았다. 분명한 건 남궁민에게 금전적을 도움을 줄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 두 남자 모두 자신을 뒷받침 해줄 탄탄한 집안 배경을 가진 것도, 직업으로 내는 수익이 많은 것도 아니다. 이른바 ‘금수저’와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봐도 여자 주인공을 신데렐라로 만들어주긴 힘들어 보인다.

이영미 드라마 평론가는 “남자 주인공들이 평범해 졌다는 건 백마 탄 왕자가 여자 주인공을 구원하는 신데렐라 스토리도 깨졌다는 걸 의미한다”며 “드라마는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사회를 반영한다. 지금 대중들이 느끼기에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무너졌고 이에 대한 희망도 사라졌기 때문에 신데렐라 스토리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판타지적 능력 소유자, 왕자님은 아니더라도 ‘흑기사’=완벽한 왕자님이라는 타이틀 대신 남자 주인공들은 특별한 능력을 하나씩 부여받았다. ‘또 오해영’의 도경은 여자 주인공 해영(서현진)과 관련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미녀 공심이’ 단테는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식별해 내는 동체시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초감각은 돈이나 집안 배경 없이도 여주인공을 위기로부터 구해주는 흑기사 역할을 할 수 있게 한다.

과거 사랑에 대한 실패로 마음의 문을 닫고 일에만 열중하는 까칠남 도경이 여주인공 해영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도 이 능력 때문이다. 해영에게 닥칠 근접한 미래가 보이기에 곁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맴돈다. 해영이 위기에 처했을 때도 초감각 덕에 구세주처럼 등장한다.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마음은 어느새 사랑으로 싹튼다. 도경에게 보이는 미래의 장면은 시청자에게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장치가 돼 극의 재미를 끌어 올리고 있다.

단테에게는 빠르게 움직이는 상황을 천천히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덕분에 폭력배들을 거뜬히 물리치고 공심이를 위기상황으로부터 구출해준다. 이를 계기로 둘 사이는 더 가까워진다. 이에 더해 단테의 동체시력을 표현하기 위해 슬로모션으로 처리되는 장면들이 많아 웃음 포인트가 된다.

드라마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남자주인공의 초감각적인 부분들이 여성들의 보호받고자 하는 심리나 욕망과 연결돼 극적인 재미를 살리는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남자 주인공들의 배경과 능력은 변했다지만 한 가지 법칙은 그대로다. 예쁜 여주인공보다 못난 여주인공을 택한다는 점이다.

‘또 오해영’과 ‘미녀공심이’의 공통점은 예쁜 여주인공과 평범한 여주인공의 대비가 뚜렷하면서도 의도적이라는 것이다. ‘또 오해영’에선 동명이인이라는 이유로 평생 비교당한 두 여성 캐릭터의 대비가 명확하다. ‘미녀 공심이’에서도 변호사에 얼굴까지 예쁜 공심이의 언니와 평범한 외모에 딱히 내세울 스펙이 없는 취준생 공심이가 대척점을 이룬다. 하지만 남자주인공이 선택하는 건 조금은 망가지고 짠해보여도 평범하게 자기 삶을 사는 여자 주인공이다.

이영미 드라마평론가는 “평범한 남자주인공과 예쁘지 않다고 설정된 여자 주인공의 사랑이 성사되는 건 결국 대다수 시청자들이 평범한 여주인공에 이입하고 자신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은지 기자/leun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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