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분량은 적어도 역할은 크다. 사소한 캐릭터가 될 수 있는 인물에게도 할 말이 있는 ‘캐릭터성’을 부여해 탄탄한 캐릭터가 돼가고 있다. 이때문에 서현진 회사의 팀장, 에릭의 사운드 녹음실 직원들 등 조연들에 대한 인터뷰 요청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오해영(서현진)의 친구 희란(하시은)은 ‘또 오해영‘ 홈페이지에 설명이 빠져있을 정도로 비중이 그리 높지 않은 인물이다. 하지만 이름에 대한 오해로 이 드라마의 어긋난 멜로의 사단을 야기시킨 인물이다.
박도경으로 하여금 한태진(이재윤) 관련 정보를 그냥 오해영(서현진)이 아니라 예쁜 오해영(전혜빈)에 대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한태진을 망하게 해 서현진의 결혼을 깨트리게 한 장본인이다. 박도경에게 애인이었던 해영(서현진)이 잘 나가는 사업가와 결혼한다는 얘기를 처음 했으니 파장이엄청나게 커져버렸다. 희란은 서현진에게 “이 사단 내가 시작한 거 같다. 내가 박도경한테 말한 적 있었어.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장 회장(강남길)은 순해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영악하고 약삭빠른 노인이다. 처음에는 사람 좋은 노인 느낌을 지녀 도경이 부탁을 다 들어주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여자의 아들이라 더욱 그렇게 했겠지만, 사실은 도경을 도와준 게 아니라, 한태진과의 사업이 맞지 않아 투자자금을 뺀 것이었다. 이처럼 조그만 캐릭터도 디테일이 있고 반전까지 있는 셈이다.
에릭 엄마로 나오는 허지야(남기애)는 전혜빈에게 자기 아들과 떨어지게 만들었다. 사랑을 못받고 자란 아이라는 이유였다. 에릭 엄마는 죽은 남편이 남긴 재산을 영화제작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했다. 그 돈을 만회하기 위해 재력가를 만나기 위해 계속 결혼한다. 아들에게 ”내가 할 줄 아는 게 이것밖에 없잖니“라고 말할 때는 짠해졌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엄마 역할을 하려고 한 것이다.철 없는 엄마지만 음향감독인 남편은 밖으로 돌고, 젊은 시절부터 외로움을 견뎌내야 했던 엄마가 조금은 이해된다.
해영 엄마인 황덕이(김미경)는 딸에 대해 온갖 감정을 다 터트린 엄마다. 딸내미 하는 꼴을 보면 꼭 말 한 마디 덧붙여야 하고, 그래도 속병난 딸 아침밥은 해먹여야 속이 풀리는 푸근하고 정 많은우리 시대의 엄마다. 밥 먹고 있는 에릭에게 ”너는 왜 애(자기 딸) 사랑안해“라고 따질 때는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하여튼 이 엄마만이 할 수 있는 대사다. 열이 뻗치면 옷을 훌렁훌렁 벗는 것도 황덕이만의 캐릭터다.
황덕이는 딸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딸이 결혼을 깼다고 오해해 난리를 일으켰지만 사정을 알고나니, 보통 엄마보다도 더 친구같아진다. 노래방에서 딸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도 화끈하다.
황덕이는 시청자 입장에서 오해영을 보게 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내가 내 딸 구박하는 건 봐줘도 남이 내 딸 욕하는 건 못 보는’ 엄마다. 딸에게 남자를 ”접어라“라고 했다가 ”다시 만나라“라고 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딸이 엄마에게 “나 사실 차인거에요. 엄마”라고 하자 “정 짧고 의리 없는 애는 아니구나”라고 말해주는 엄마다.
이 엄마의 역할이 없었다면 해영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엄마가 그나마 분풀이를 해준다. 속시원하고 현실적인 캐릭터다.
반면 해영 아빠 오경수(이한위)는 말이 없는 사실만으로 슬퍼보이는 사람이다.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늘 가족이 있다. 갑자기 멜로적인 멘트를 하며 쑥 들어올때 효과가 커진다.
‘문차일드’ 멤버로 활동한 바 있는 허정민이 연기하는 에릭동생 박훈은 녹음실 직원으로 일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영화 감독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허영지와 사랑에 올인하는 철없는 박훈이 쓴 시나리오가 제작자로부터 구박을 받자, 도경은 진정 동생을 위해 쓴소리를 한다. 츤데레 형과 동생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사랑과 직장생활 모두 힘들게 하고 있는 해영(서현진)에게 최고의 위로이자 흑기사가 돼주고 있는 성 팀장(권해성)도 적은 분량임에도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