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힘’ 루시아(심규선) 콘서트, 한 편의 뮤지컬 보는 듯한 착각

[헤럴드경제=이은지 기자] 어둠을 깨고 조명이 떨어졌다. 관객석은 순간 숨이 멎었다. 애잔한 노래 소리가 흐르자, 그제야 날숨을 뱉어 낼 수 있었다. 깊은 심연에서 끌어올린 루시아의 목소리에 닫힌 마음도 눈물샘도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여러분 인사드릴게요. 저는 루시아입니다.”

지난 12일 오후 6시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루시아(심규선) 라이브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가 열렸다. 원래는 발레 공연이 주로 열린다는 이곳 공연장은 발레와 같은 ‘부드러운 힘’을 가진 루시아의 무대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었다.

“이런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꿈만 같아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여러분들 덕분이라는 생각으로 남은 무대 보여드리겠습니다. 무명이고 가진 거라곤 열의, 욕심 밖에 없던 신인 뮤지션을 이 무대에 세운 건 여러분들입니다. 오늘은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주인공입니다.”

[사진=파스텔뮤직 제공]

루시아는 데뷔 5년차 싱어송라이터로 홍대 인디신에서 애피톤프로젝트 콘서트의 게스트 싱어를 거쳐 매년 단독 콘서트를 여는 뮤지션으로 거듭났다. 심규선이라는 이름에서 루시아로 이름을 바꾼 것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한결같이 앨범을 내고 있다.

“일단 구두를 좀 벗을게요” 루시아는 신고 있던 구두를 벗고 맨발로 무대에 섰다. 루시아는 매 공연마다 맨발로 노래를 부른다. 처음 공연을 찾은 사람들은 적잖아 당황하지만 털털하게 구두를 벗는 모습에 일단은 무장해제였다.

화려한 퍼포먼스는 없지만 전날 첫 공연에 이어 이날도 1층 객석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온 팬들로 가득 찼다. 매년 콘서트를 찾는 골수 팬부터 입소문 듣고 찾아온 관객까지 루시아의 목소리로 하나가 됐다.

[사진=파스텔뮤직 제공]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 했다. 표정 연기와 혼자 무대 위를 누비며 노래에 심취한 모습은 넓은 공연장을 에너지로 가득 채웠다. 가사에 담는 손짓, 몸짓 하나 하나가 애절한 감정을 객석으로 보냈다. 강약을 오가는 목소리와 떨림에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루시아는 관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제가 여러분들과 눈을 맞출 거예요. 피하지 마시고 웃어주셔도 되고 눈물이 나면 또 울어주세요.”

첫 곡 ‘데미안’에 이어 콘서트에서 처음 선보이는 노래 ‘피어나’에서 기어코 눈물이 터졌다. 몇몇 관객들이 눈물을 닦았다. “벌써 눈물을 흘리시면 안됩니다.” 이날 루시아는 잊고 있던 누군가, 아직도 마음에 담고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들로 관객의 마음을 후벼 팠다. “기억나는 사람 계신가요? 그렇다면 오늘은 마음껏 내려놓고 그리워하셔도 됩니다.”

[사진=파스텔뮤직 제공]

이번 공연은 지난달 발매한 앨범 ‘부드러운 힘’을 기념하기 위한 무대다. ‘부드러운 힘’은 콘서트에서 부른 라이브 음원을 추출한 라이브 앨범이다. 라이브 앨범을 낸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음원과는 또 다른 에너지와 힘이 관객석으로 계속 밀려들었다. “부드러운 힘은 저의 모토이자 제가 음악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지향점입니다. ‘부드러운 힘’이라는 단어를 저는 제 음악 속에 넣으려 하고 있어요. 제 음악이 부드러우면서도 슬프고 아프지만 그 안에서 희망적인 걸 발견하고 힘을 발견하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인기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혹시 듣고 싶은 곡이 있으면 말해달라”는 루시아의 말에 순식간에 관객석에서는 노래 이름이 쏟아져 나왔다. 루시아도, 가만히 앉아 있는 관객들도 당황할 만큼 1분이 넘게 여기 저기서 제각기 다른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해 공연장은 한 동안 웃음바다가 됐다. 루시아는 객석의 요청에 따라 ‘잿빛의 노래’ 등 두 곡을 밴드 없이 즉석에서 불렀다.

이날 루시아는 대표곡 ‘꽃처럼 한철만 사랑해줄 건가요?’에 이어 마지막 곡 ‘부디’를 부르고 퇴장했다. 무대 조명을 꺼졌지만 박수소리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다시 무대 조명이 켜지고 밴드 사운드가 앵콜 무대를 알렸지만 어쩐지 무대 위에 루시아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때였다. 노래 소리와 함께 관객들은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루시아가 객석 뒤에 등장한 것이다. 루시아는 뒤쪽부터 관객들과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어느새 노래 대신 콘서트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나눴다. 그 어느 콘서트장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결국 앵콜곡이 다 끝날 때까지 루시아는 관객 한 명 한 명에게 감사를 전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탈하고 겸손한 마음을 담은 콘서트였다.

예정된 120분을 훌쩍 넘기고 오후 9시가 다 돼서야 콘서트가 끝났다.

“쉴 세 없이 음반을 발표하면서 이러다 더 이상 곡을 못 쓰지 않을까, 창작의 샘이 마르지 않을까 걱정해요. 그런데 콘서트만 하고 나면 여러분들이 제게 주신 반응에 또 다시 집에 가서 곡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도 아마 끝나고 집에 가서 곡을 쓸 것 같아요.”

leunj@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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