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팍팍함이 묻어나는 멜로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 여성들에 공감
에릭의 초능력도 갈수록 궁금증 유발
식상해서 힘이 빠진줄 알았던 로맨틱 코미디물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KBS ‘태양의 후예’가 재난멜로라 불리며 국내외에서 엄청난 반응을 일으킨 이후 로코물인 tvN ‘또 오해영’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MBC ‘운빨 로맨스’와 SBS ‘미녀공심이’, 수지와 김우빈이 주연을 맡아 7월초 방송되는 KBS2 수목극 ‘함부로 애틋하게’도 모두 로코물이다.
‘또 오해영’은 로코물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꺼져가던 로코물의 불씨를 다시 지폈다.
그 이유는 대략 두가지 방향에서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드라마의 환경적 요인이고 또 하나는 ‘또 오해영’의 특수 요인이다.
먼저 환경적 요인. 얼마전만 해도 로맨틱 코미디는 너무 소소해서 잘 안보였다. 사극이나 막장드라마 처럼 자극이 센 드라마가 먹혔다. 지금은 드라마를 통해 작은 위로를 받고 위안을 얻는 시대다. 이들에게는 로맨틱 코미디가 행복감을 줄 수 있다. 시청자들은 남녀 주인공이 알콩달콩하는 단계로 빨리 넘어가 이야기가 빨리 전개되길 원한다.
이것만으로는 심심하다. 그래서 사회적 메시지를 살짝 섞어 붕 떠있는 드라마를 가라앉게 하고 힘이 생기게 한다. 예쁜 여성(예쁜 해영이나 공미)과 비교돼 열패감을 느끼는 여주인공, 예쁜 여성이 많은 남친을 거느리는 부익부 빈익빈 멜로현상 등을 가미한다.
이건 외모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가난하면 계속 가난하고 부자는 계속 부자라는 경제력 문제 제기에 대한 변주일 수도 있다. 남녀관계의 힘과 권력에 경제력이 들어가면 사회적 코드와 어울리는 지점이 생긴다. 여기서 여주인공 서현진이 연기하는 해영 캐릭터는 이 시대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 여성을 가장 잘 묘사한 것으로 평가받으면서 공감대를 한껏 올려주고 있다.
그 다음은 ‘또 오해영’의 특수 요인이다. ‘또 오해영’은 단순로코물은 아니다. 남자주인공 에릭(박도경)이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이마저도 식상할 수 있다. 에릭의 초능력은 갈수록 단순 초능력이 아닌 희한한 장치가 돼가고 있다. 처음에는 해영(서현진)과 관련된 미래를 볼 주 아는 정도의 초능력인줄 알았는데, 이게 점점 복잡해지며 궁금증 유발 기제가 되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의 단점은 뻔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2~4회쯤 남자주인공에게 샤워 한번 시키고, 키스 몇번 하고나면 사랑은 완성돼 끝을 맞게 된다. 그래봐야 이미 결정된 단순 스토리다.
하지만 에릭의 초능력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무척 궁금하게 한다. 에릭은 데뷔한 지 18년이 됐는데도 아저씨 느낌이 나지 않고 여성을 심쿵하게 한다. 에릭은 드라마상에만 그려질 수 있는 단순한 재벌2세 남자가 가진 이미지가 아니라, 찌질 고급 부자 이미지가 결합된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에릭의 ‘증상(초능력)’으로 인해 궁금증까지 생기니 안볼 수가 없다. 정신과 의사는 에릭에게 “지금까지 당신에게 뭐가 보였는지 알겠다”고 떡밥을 던졌었고, 교통사고 장면에서 피투성이가 됐던 에릭은 “그 여자랑은 이렇게 끝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어차피 난 죽으니까”와 “후회하면서 죽지는 않을거야. 내마음 끝까지 갈거야”라는 대사로 관심을 끌었다.
‘또 오해영’은 코미디로 시작해 중반부는 비극을 거져 종국에는 해피엔딩으로 갈 것 같은 예감이다. 힘든 사랑을 할 때는 마치 그리스의 비극을 보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로코물은 일을 엉망으로 만드는, 즉 계략을 꾸미는 자가 있다. 이를 악인(악녀)이라고 한다. 막장 멜로는 이를 종영 직전까지 반복한다. 하지만 ‘또 오해영’에는 악인이 없다. 작은 해프닝과 오해로 결혼이 뒤엎어지고 주인공 4명 모두 파탄 지경에 이를 정도로 큰 충격파로 나타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일종의 인간의 운명 같은 건지도 모른다.
박해영 작가가 그리는 이 드라마는 여주인공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으면 귀인이 나타나는 철없는 로코는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세계의 팍팍함이라는 공감요소 속에 이뤄지는 멜로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서현진과 에릭이 해피엔딩을 맞을 것이고, 그 이전 큰 시련에 봉착한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철저하게 꼬여진 최악의 멜로 상황을 어떻게 반전시킬지를 지켜보는 게 최고의 관전포인트가 될 것 같다.
‘또 오해영’은 애초 로맨틱 미스터리물이라고 하려다가 동명오해로맨스로 이름붙였다. 처음부터 미스터리를 표방하면 사람들이 그 상황를 미리 예상하게 되지만, 미스터리라는 단어를 숨겼더니 궁금증이 증폭됐다. 별 것 아닌 것이라고 생각했던 에릭의 초능력이 제법 강한 미스터리와 결합한 것처럼 돼 지금까지 못보던 로코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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