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에 ‘보은의 식탁’ 차려주는 재미동포..

크레이지 오토 허진 사장

“한국전쟁 참전용사에 감사합니다. 당신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는 여기에 없었을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랭거스터시에 본점을 두고 인근 산타클라리타, 액턴, 로자먼드 등지에 5개 분점을 낸 레스토랑 ‘크레이지 오토스’(Crazy Otto’s)의 허진(56, 사진) 사장은 올해도 어김없이 지역일간지 ‘안텔로프 밸리 프레스’에 광고를 냈다.

19일자에 실린 이 광고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는 누구나 25일 하루 동안 모든 ‘크레이지 오토스’에서 무료로 식사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매번 신문에 광고를 내고 식사초대를 한 것이 벌써 12번째다.

그러나 올해는 하마터면 ‘보은의 식탁’을 차리지 못 할 뻔했다. 허 사장은 최근 대학 졸업을 앞둔 막내아들을 사고로 먼저 떠나 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아내 전은옥(54) 씨와의 사이에 3남을 뒀던 그는 20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작년보다 모티베이션(동기부여)이 같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해왔던 일을 멈출 수는 없지 않습니까”라며 애써 슬픔을 감췄다.

그러면서 “큰아들 리처드(27)가 부모를 위로한다고 대학 편입을 결정해 그나마 다행”이라며 “다시 힘을 내 참전용사를 모실 수 있었던 것도 장남 덕분”이라고 말했다.

리처드는 해병대원으로 아프가니스탄전에서 탈레반과 전투를 하다 부상해 돌아온 후 다시 해병대로 복귀하려고 열심히 치료 중이었다. 하지만 동생을 잃고서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려 진로를 바꿨다고 한다.

올해는 별도 행사는 없이 음식만 대접한다. 지난해에는 84명의 참전용사에게 ‘평화의 사도 메달’을 대신 전해달라는 LA총영사관의 부탁을 받은 터에 지역 정치인은 물론 언론들까지 식당을 찾아와 제법 규모 있는 행사로 치러졌다.

“참전용사들의 참석자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올해만도 3명이 세상을 떠났죠. 그래도 100명은 넘게 찾아오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참전용사를 위한 식단은 나이를 고려해 부드러운 음식으로 준비할 예정이다. 수프, 샐러드, 으깬 감자, 육질이 부드러운 소고기 요리 등을 메뉴로 정했다.

허 사장은 한국전쟁 발발일인 6월 25일에만 참전용사를 모시지는 않는다. 매주 화요일 아침마다 랭커스터시의 본점에서 ‘노병을 위한 커피’라는 이름으로 참전용사와 모든 재향군인에게 음식과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그의 이런 행보는 2002년부터 시작됐다. ‘크레이지 오토스’에 참전용사가 많이 찾아오면서다. 음식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뭔가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 참전용사들을 초청한 것이다. 특히 아들이 부상해 돌아온 후 동병상련을 느껴 참전용사들에게 더 각별하게 마음을 썼다고 한다.

경기도 수원 출신인 허 사장은 인천전문대를 졸업하고 1982년 미국에 이민했다. 여러 차례 사업에 실패하다 인수한 식당이 고객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리를 잡았다. 그의 식당은 지난 2003년 LA카운티가 선정한 ‘가장 미국식 아침이 맛있는 식당’에 뽑혔다. 현재 그는 랭커스터시에서 ‘크리미널 커미셔너’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분이 그냥 참전용사가 아니고 이제는 친구처럼 지내요. 그러다 눈에 안 보이거나 연락이 안 되는 분이 있으면 가슴이 울컥합니다. 세상을 떠나셨다는 의미거든요. 우리가 미국에 와서 이만큼 살게 된 것도 다 참전용사들의 덕이잖아요. 마지막 한 사람의 노병이 남을 때까지 ‘보은의 식탁’을 차릴 것입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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