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톡톡] 선배 걸그룹과 후배 걸그룹의 연결고리

[헤럴드경제 =서병기 선임 기자]일제강점기인 1939년 결성된 저고리시스터는 한국 최초의 걸그룹으로 알려져있다.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과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박향림이 포함된 4인조 걸그룹으로 악극단 공연때 몇몇 코너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난영은 자신의 걸그룹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딸과 조카를 훈련시켜 3인조 여성그룹 김시스터즈를 만들어냈다.

53년 결성된 김시스터즈는 미8군무대서 활동하다 그 인기를 발판으로 59년 아시아 걸그룹으론 최초로 라스베가스 무대로 진출해 명성을 떨쳤다.

김시스터즈의 모친 이난영과 부친 김해송은 완벽한 음악 선생이었다. 김해송은 성악가에 작곡가 악극단 단장, 뮤지컬 기획자 등 만능 음악인이었다. 한국전쟁때 납북돼 그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

이난영은 명조련사였다. 세 자매에게 무려 10 종류가 넘는 악기를 연주할 수 있도록 했다. 팀이 깨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연애를 못하게 하고 항상 같이 다니게 하는 등 행동지침을 만들었다. 요즘 기획사의 연습생에게 적용되는 걸그룹(아이돌) 훈련시스템의 창시자라 할만하다.

김시스터즈는 아빠로부터는 선천적인 음악적인 재능을 물러받았고, 엄마로부터는 후천적으로 그 재능을 몸속에 내재화할 수 있는 강훈을 각각 받을 수 있었다. 혹독하게 연습한 결과 수시로 다른 무대를 선보여 식상함을 방지할 수 있었고, 1962년 그들이 부른 ‘찰리 브라운’은 미국 빌보드 싱글 7위에 올랐다. 당시 엘비스 프레슬리나 비틀즈가 출연했던 TV 쇼 ‘에드 설리번 쇼’에도 22차례나 나갔도 딘마틴쇼에도 출연했다.

스코틀랜드 민속악기인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한 후 악기를 빙글빙글 돌리는 퍼포먼스는 지금 봐도 가히 놀라울 정도다.

‘아침 저녁 식사 때면 런치에다 비후스텤 맛 좋다고 자랑쳐도/우리나라 배추 김치 깍두기만 못하더라/(중략)자나깨나 잊지 못 할 된장찌개들아’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김치 깍두기’도김시스터즈가 부른 노래다.

1960년대에는 윤복희가 포함된 4인조 걸그룹 ‘코리안키튼즈‘가 동남아와 영국에서 활동며 BBC에도 소개되기도 했다. 윤복희는 당시 비틀즈가 그들 공연에 자신을 초대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60년대 국내 걸그룹 공백은 이시스터즈가 메웠다. 국내 대중을 상대한 만큼 ‘울릉도 트위스트’ ‘남성금지구역’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등 많은 히트곡들을 내놨다.

1969년 MBC TV가 개국하는 등 60년대 후반 TV 시대로 접어들며 걸그룹 펄시스트즈가 미8군 겨냥용이 아닌 TV쇼에 적합한 요인들을 갖추고 등장해 큰 인기를 구가했다.

늘씬한 키에 고급스러운 섹시미, 솔과 사이키델릭이라는 새로운 음악 등을 두루 갖추었다. 신중현이 만든 ‘커피 한잔’은 당시 기자의 집에도 LP판이 있었을 정도였으니 100만장 넘는 판매 기록이 쉽게 이해된다.

이후에도 파격적인 의상을 선보였던 바니걸스와 혼혈 그룹 희자매 등이 활동해 눈길을 끌었다.

걸그룹 역사가 이처럼 77년간 이어져오고 있지만 이들 선배 걸그룹과 아이돌 이미지로 소비되는 요즘 걸그룹 사이에는 단절된 부분이 있다.

그 점에서 ‘미미 시스터즈’와 ‘바버렛츠’가 김시스터즈의 멤버 김민자의 방한 기념 헌정 무대를 열고, 이난영 탄생 100주년을 기리는 콘서트에 동참한 것은 좋은 시도라 할만하다.

가창력과 화음, 비주얼, 춤(퍼포먼스), 스타일(의상), 생활문화, 걸그룹 소비 지점, 트렌드 등등에서 선배 걸그룹과 후배 걸그룹간의 변화와 인과관계,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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