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는 종로 반쥴로 60~80명의 관객을 바로 앞에 둔 소극장 공연이었다. 가수와 관객간의 거리가 무척 가까운 EBS TV ‘스페이스 공감’과 유사한 분위기였다.
반쥴은 1970~80년대 젊은이들 사이에 인기 높은 레스토랑이다. 기자도 당시 대학생들의 핫 플레이스였던 종로 코아 주변 ‘숲속의 빈터’나 ‘반쥴’에서 비엔나 커피를 먹으며 젊음을 보냈던 장소다. ‘응답하라 1988’에서는 정봉과 미옥이 각각 반쥴의 1~2층에 나와 엇갈림의 장소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공간이 달라지니 음악도 달리 들린다. 실내와 실외 음악은 너무도 다르게 느껴진다. 최근 올림픽공원 수변무대에서 열렸던 록밴드 버즈의 공연은 마치 소풍 같았다. 실내도 체육관에서 하는 공연과 소극장 공연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반쥴 같은 레스토랑 소극장과 어쿠스틱 포크그룹 동물원은 정말 잘 어울렸다. 동물원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편안하고 포근하다. 화려한 장식과 미사여구는 없지만, 왠지 정이 간다. 여자친구와 가도 좋고, 아내, 남편, 부모, 아이, 누구와 가도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 콘서트에 이렇게 다양한 관객층을 부를 수 있다는 것도 동물원의 강점이다.
‘거리에서’를 부르던 김광석도 없고, ‘응답하라 1988’이 다시 소환한 ‘혜화동’과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만든 정신과 의사 김창기는 다른 음악적 길을 가고 있지만, 박기영(보컬, 건반) 유준열(보컬, 기타) 배영길(보컬, 기타) 세 멤버가 동물원을 잘 지키고 있다.
동물원은 1988년 정치적으로 힘든 시기에 데뷔해 소박하고 담담하며 서정성 있는 음악들과 꾸준한 공연을 통해 기존의 대중음악이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채워왔다. 지금까지 총 10개의 음반을 발표했으며, ‘거리에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널 사랑하겠어’ 등 시대를 뛰어넘는명곡들의 주역들이다. ‘무한도전’에서 가끔 흘러나오던 후크송(?) ‘우리들은 미남이다’도 동물원의 곡이다.
날라리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닌 회색분자 같지만, 캐릭터를 돋보이게 잡지 않은 데에 오히려 동물원의 매력이 있다. 동물원의 음악은 시간이 갈수록 쓸쓸함과 그리움 등 다양한 감성을 건드리는 힘이 강해진다. ‘우~ 너무 쉽게 변해가네’(변해가네)와 ‘너는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지’(시청 앞 지하철역에서)의 가사에서 느껴지는 감성은 말로 표현할 필요조차 없다. 평범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가사들이라 공감도가 무척 높다.
대학 시절 만난 여자친구가 두 아이의 엄마라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면 끝난 거다. 한마디로 “김이 샌” 거다. 하지만 이 노래는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빛나는 열매를 보여준다 했지/우리의 영혼에 깊이 새겨진/그날의 노래는 우리 귀에 아직 아련한데’라고 끝난다. 막장멜로에 길들여진 우리들에게 이처럼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멜로로 마무리되는 노래는 또다른 느낌을 준다.
동물원은 도시의 인간들이 부대끼며 생긴 상처들까지도 원래 모습을 생각하며 아름답게 보듬는다. 동물원의 노래중에서‘혜화동’이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 등 지하철과 동네 지명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물과 공간 하나에도 감성과 의미를 부여해왔고 그 가치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멤버 유준열은 “변진섭 노래를 듣기에는 조금 안맞고, 노래를 찾는 사람(노찾사)의 노래를 듣기에도 조금 그런 사람들이 동물원 노래를 들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런 틈새시장을 공략했다”면서 “작지만 소중한 것의 가치를 노래해왔다”고 말했다.
동물원의 음악들은 소박하며 기교가 없이 섬세하고, 수채화 같은 서정성이 느껴진다. 과연 이런 잔잔한 초식성 음악들이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어린 시선도 있다.
하지만 일렉트로니카와 EDM의 대척점에서 기교 없음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동물원 음악의 생명력이 살아난다.
동물원은 ‘신춘음악회-미술관 옆 동물원’과 ‘동물원과 함께 가는 가을소풍’ 등으로 공연을 브랜드화 시켰다. 물론 동물원의 음악적 성격과 썩 잘 매치되는 공연이다.
동물원은 50세가 넘는 멤버들이 직장 생활을 하며 그룹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박기영은 가돌릭관동대 실용음악과 교수로 있고, 두 멤버도 각자의 일이 있다. 이들이 계속해서 음악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월의 때가 많이 묻은 어른들이 잠깐이나마 어설펐지만 꿈이 있었고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