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자는 ‘함틋’을 두고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도 요리실력은 별로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자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요리재료는 좋다. 한류스타이기도 한 두 남녀주인공의 멋있고 화려한 비주얼은 좋은 그림을 제공한다. 요리 실력도 나쁘지 않다. 스토리와 메시지가 괜찮다는 말이다.
‘함틋’은 한마디로 염치(廉恥)를 말하려는 드라마이다. 염치는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다. 이경희 작가는 최현준(유오성)이라는 인간을 통해 염치가 무엇이며,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고 체면을 차린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는 듯하다.
김우빈(신준영)과 수지(노을)의 멜로, 준영-노을-지태(임주환)의 삼각관계 모두 유오성이라는 한 인간에 의해 얽혀져 있다.
극중 유오성은 가난한 법대생→검사→검찰간부→국회의원으로 욕망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그는 출세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자신을 끌어줄 국회의원 ‘라인’을 잡았다.
하지만 목적만을 위하다 보니 중요한 것들을 팽개쳤다. 법대생때 학비를 벌기 위해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영옥(진경)을 차버렸다. 임신한 영옥은 22살때 혼자 준영을 낳았다. 이쯤 되면 김우빈이 유오성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게 될 건인지는 뻔하다.
검찰간부였던 유오성은 노을의 아버지를 죽인 뺑소니 운전자가 자신을 출세시켜준 국회의원 딸이어서 사건을 은폐시킨다. 그러니 노을은 죽은 아버지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라도 유오성을 단죄해야 한다.
이처럼 극중 스토리와 물려 김우빈은 수지와 맺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삼각멜로의 한 축을 형성하는 지태는 아버지(유오성)가 지은 죄 때문에 노을을 사랑하면서도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이것도 염치를 보여주는 거다.
법조인 아버지의 버려진 아들 김우빈은 법대생이었다가 연예계 스타가 돼 엄마와도 불화하고 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연예스타 김우빈과 생계형 다큐감독 수지의 멜로는 앞으로 더욱 더 극한 상황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이 멜로는 유오성이 어떤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느냐의 여부, 더욱 더 막장인간으로 가느냐 아니면 회개하는 인간으로 가느냐에 따라 또 다른 느낌을 줄 것이다.
‘함틋‘은 요리재로도 괜찮고 음식 맛도 나쁘지 않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요리과정이 문제다. 음식은 재료도 싱싱해야 하고 맛도 좋아야 하지만 요즘은 요리과정도 재미있어야 한다. ‘냉장고를 부탁해’를 보면 냉장고에 있는 식자재로 15분만에 요리해 마치 마술을 보여주는듯하다. 쿡방 자체의 엔터테인먼트화다.
음식 맛과는 상관없는 이 과정들도 요즘은 매우 중요한데, 이경희 작가의 ‘함틋’은 이 과정이 한마디로 너무 올드하고 촌스럽다. 마치 한 10년간 딴 세상에서 있다 온 사람같다. 각종 클리셰로 넘쳐나고, 신파와 상투성, 기시감 덩어리다. 그러다 보니 신준영(김우빈)은 12년전 만들어진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년)의 차무혁(김우빈)보다 멋있지 않다.
내용이 촌스러운 것과 전달방식이 촌스럽다는 말은 전혀 다른 말이다. 내용이 아날로그적이고, 전통적인 것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전달방식이 상투적이고 올드한 것은 문제가 된다. 그것은 2016년 드라마가 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경희처럼 자의식이 강한 작가들은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가 무엇인지, 스타일은 어떤 것인지 귀를 열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덕현은 “수지와 김우빈을 제외하면 트렌디함이 없다”고 했다.
이경희 작가는 <상두야, 학교가자>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맙습니다> <이 죽일 놈의 사랑>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참 좋은 시절> 등을 썼다. 이중에서 <미사> 등 멜로물들은 대개 극한 상황까지 가게해 그속에서 감동멜로를 그려낸다. 휴머니즘을 전하는 드라마도 있다.
가령, ‘참 좋은 시절’은 경주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해 가난했지만 순수하고 정이 넘치던 아날로그 시절을 보여준 좋은 드라마였지만, 전개과정이 시청자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함틋’에도 그런 요소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