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히토 일왕의 가장 큰 관심사는 일본 ‘헌법’에 드러난 일왕의 지위였다. 때문에 아사히(朝日) 등 주요매체는 일왕이 일본 헌법에 명시된 ‘상징’으로서 일왕의 이미지에 결함이 생기는 것을 우려해 생전 퇴위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아사히는 “일왕이 ‘생전 퇴위’의 뜻을 나타낸 배경에는 다망한 일상 때문”이라며 “일왕이 추구해온 ‘상징’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공무를 줄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도(共同)통신은 일왕이 충분한 공무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면 퇴위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반(反)아베 성향의 진보매체인 ‘겐다이(現代) 비즈니스’는 아키히토 일왕이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 내각이 추진하는 개헌에 불안을 느끼고 생전 퇴위 입장을 서둘러 표명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전 궁내청 관계자는 매체에 일왕이 “일왕을 ‘일본국의 원수’로,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설정하는 자민당의 헌법 개정 초안에 위기감을 느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민당이 추진하는 개헌 초안에는 일왕을 국가의 ‘원수’로 명문화하고 실질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 헌법상(헌법 제 1조) 일왕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활동해왔다. 하지만 자민당의 개정안은 계약체결의 책임자를 일왕으로 규정한다. 때문에 마이니치 등 진보매체는 아베 내각이 과거 일왕을 중심으로 국가 총동원체제로 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특히, 자민당의 헌법 전문은 국민이 일왕을 ‘모시는’ 상하관계를 언급해 국민주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자민당 간부는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퇴위 의사를 표명한 소식이 참의원 선거전에 알려질 경우 “선거기간 동안 개헌 논의로 여론을 자극하는 것”을 우려해 “참의원 선거 이후 보도를 전했다”고 겐다이 비즈니스에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NHK 방송은 82세의 고령이 된 일왕이 무리하게 일정을 소화하면서 평소 “헌법에 정해진 상징으로서 의무를 충분히 감당할 사람이 황제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며 수차례 입장을 밝혀왔다고 전했다.
일왕이 살아 있는 동안 물러난 사례는 에도(江戶)시대 후반기인 1817년 고가쿠(光格) 일왕(1780∼1817년 재위)이 마지막이었으며 아키히토 일왕이 왕위를 양위하면약 200년 만에 생전퇴위가 이뤄지게 된다.
지난달 13일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퇴위하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혔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일왕의 의중이나 왕위 문제를 놓고 논의가 활발하다.
일왕의 퇴위를 추진하는 경우 퇴위 후 신분, 처우, 칭호 등을 어떻게 할지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또 퇴위에 필요한 논의 과정에서 여성 일왕을 인정할지도 주목된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아베 내각이 아키히토 일왕에만 한해 생전퇴위를 허용하는 왕실전범 개정을 추진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문재연 기자/munja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