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진의 예고편] ‘서울역’, 도시괴담의 끝은 ‘좀비보다 인간’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10여년 전, 옛 서울역사가 문을 닫고 지금의 서울역이 문을 열었다. 새 서울역에는 대형할인마트, 레스토랑, 쇼핑시설 등이 빼곡히 들어섰다. 기차여행을 하는 사람, ‘한국 경제사’의 상징물이었던 인근 회사를 다니는 월급쟁이들, 외국인 관광객 등으로 서울역은 언제나 북적인다.

번화한 지상과는 달리 그 아래는 딴세상이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서울역에 산다. 밤이 되면 노숙자들은 지하철 광고판을 들어올려 모포를 꺼내 덮는다. 대로에서 보이는 번쩍번쩍한 서울역 뒤편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개발이 덜 진행된 낡은 주택가의 좁은 골목이 빼곡하다. 

[사진= ‘서울역’ 스틸컷 (NEW 제공) ]

이곳에 위치한 한 여관방, 가출 소녀 혜선(심은경)이 혼자 잠에서 깨어난다. 동거하는 남자친구 기웅(이준)은 어디로 갔는지 자리에 없다. 방 안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술병, 옷가지, 짐가방 등으로 어수선하다. 기웅을 찾아나서려는 혜선에게 여관 주인은 “밀린 방세를 내지 않으면 짐을 다 갖다 버릴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다시 서울역 앞 광장. 이곳에는 목을 물린 상처로 피를 뚝뚝 흘리며 한 노인이 걸어가고 있다. ‘보편적 복지’를 소리높여 말하던 남자는 노인을 도우러 다가가지만, 코를 찌르는 냄새 탓에 뒤로 물러선다. “뭐야, 노숙자잖아. 에이….” 애니메이션 ‘서울역’(감독 연상호)의 시작이다. 서늘한 ‘도시괴담’의 탄생이기도 하다.

[사진= ‘서울역’ 스틸컷 (NEW 제공) ]

노인은 서울역 지하에 다다라 피가 흐르는 목을 부여잡고 숨을 헐떡이고 있다. 노인을 구하려는 사람은 말이 어눌하고 조금 모자란 듯 보이는 친구 한 명 뿐이다. 노숙자 쉼터에서는 우락부락한 노숙자 패거리가 전세 낸 듯 떡하니 들어앉아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 쉼터 직원들도, 파출소 경찰들도 그저 성가시다는 반응이다.

그러다 서울역 뒷편 골목길에서 노인이 발견된다. 사람을 물어뜯은 입에 피가 흥건하다. 서울역 주변은 일순간 전쟁터로 변한다. ‘좀비 떼’의 무차별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혜선의 아빠 석규(류승룡)는 기웅과 동행하면서 혜선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출몰해 돌진하는 좀비들 때문에 순조롭지가 않다. 혜선도 이들과 어떻게든 만나려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설상가상, 경찰은 좀비 떼와 이들을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을 싸잡아 “폭도”라고 지칭하며 차벽을 둘러싸고 물대포를 쏜다. 이들은 좀비와 ‘좀비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을 뚫고 서로 만날 수 있을까. 

[사진= ‘서울역’ 스틸컷 (NEW 제공) ]

알려지다시피 올해 첫 1000만 영화로 이름을 올린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이다.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잔혹 현실 애니메이션’으로 주목받아온 연상호 감독 작품이다. 개봉 순서는 ‘부산행’이 먼저였지만, 제작은 ‘서울역’ 부터다. 연 감독은 최근 ‘서울역’ 시사회에서 “좀비를 소재로 애니메이션을 만들다가 ‘실사 영화로 만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제안을 받고 ‘부산행’을 연출하게 됐다”고 밝혔다.

영화는 ‘부산행’ 속 KTX가 출발하기 전날 밤 서울역에서 벌어지는 일을 펼쳐놓은 작품이다. 재난 상황에서 생존만을 향해 직선적으로 달리다가 언뜻 언뜻 인간 군상의 모습을 보여줬던 ‘부산행’과 달리, ‘서울역’은 대놓고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았다. 가출 청소년과 노숙자의 삶이라거나, 공권력의 무자비함 앞에서 무기력한 민중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보여진다.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인지, 표현 방법이 직관적이고 직설적이다. 과감한 돌직구에 위험 수위는 없다.

목소리 더빙에는 심은경, 류승룡, 이준 등 배우들이 참여했다. 대다수의 애니메이션과 달리 ‘서울역’은 애니메이션 속 인물들의 입모양을 만들기 전 녹음하는 방식을 택했다. 심은경은 “첫 더빙 도전이었는데 입모양을 맞춰야한다는 부담감 없이 혜선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연기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역’은 17일 개봉한다. 15세 관람가. 93분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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