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극장 성수기였던 8월 초 보름 동안 10명 중 7명이 한국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극장가에 한국 영화들의 밥상이 그 어느 때보다 푸짐했기 때문이다. ‘빅4’(‘부산행’, ‘인천상륙작전’, ‘덕혜옹주’, ‘터널’)라고 불린 영화들은 모두 손익분기점을 넘었고, ‘국가대표2’, ‘서울역’ 등도 틈새를 비집고 관객들을 모았다.
다채로운 카메오도 한몫했다. 올해 여름 개봉한 한국 영화에는 유달리 카메오 출연이 많았다. 카메오의 면면도 배우 뿐만 아니라 배우의 가족, 평론가, 방송인 등으로 다양해져 영화의 재미를 더했다.
올여름 가장 화제를 모은 카메오 출연자는 배우 심은경이었다. 영화 ‘부산행’ 속 KTX에 처음 탑승해 순식간에 열차를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강렬한 좀비 역할이었다. ‘부산행’ 측은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을 알면서도 개봉 전 심은경이 열차에 탄 최초 좀비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부산행’이 공개되고 나서 임팩트 있는 그의 역할에 대한 관객들의 호기심이 높아지면서 큰 화제가 된 사례다. 이어 ‘부산행’의 프리퀄 애니메이션인 ‘서울역’에 심은경이 목소리 출연으로 참여한 것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레 ‘서울역’으로 화제가 옮겨가는 효과도 누렸다.
‘인천상륙작전’은 올여름 ‘최다 카메오 영화’로 이름을 올릴만 하다. 배우 박성웅, 김선아, 김영애와 UFC 선수 추성훈, 배우 심은하의 두 딸 등이 영화 곳곳에 배치됐다. 배우 박성웅은 첫 장면에서 인민군 대위로 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김선아는 인천 켈로부대원으로 인민군과의 추격전에서 운전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았다. 제작진은 김선아의 카메오 출연을 비중 있게 다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한 감독은 영화 시사회에서 동료들이 죽은 김선아의 무덤을 만들고 묵념하는 장면이 긴박한 전쟁 영화에서 적절한지 묻는 질문에 대해 “김선아씨의 카메오 출연에 감사했고 극중 캐릭터가 죽어서 그에 맞는 장면을 하나 넣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덕혜옹주’에서는 배우 고수가 실존 인물인 이우 왕자로 등장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실존 인물의 모습과 높은 ‘싱크로율’을 보였다. ‘터널’에서는 무너진 터널에 갇힌 하정우가 의지하는 라디오 클래식방송의 DJ로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출연했다. ‘터널’의 김성훈 감독이 이동진 평론가의 목소리가 영화에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의견을 냈고,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던 이동진 평론가가 흔쾌히 수락해 출연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뒷모습에서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안경’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대표2’ 에서는 1편인 ‘국가대표’(2008)에도 경기 해설자로 출연했던 배우 조진웅이 다시 얼굴을 내밀었다. 2016 리우 올림픽 캐스터이기도 한 SBS 배성재 아나운서도 함께 출연한다. 관객들이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카메오도 있다. ‘국가대표2’의 오프닝인 쇼트트랙 경기 장면에서 ‘국민 밉상’ 오연서가 밀치는 바람에 넘어지면서 메달 확보에 실패하는 ‘국민요정’은 걸그룹 EXID의 하니다. 엔딩 크레딧의 이름을 보고 “하니가 어디 나왔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관객이 많았다.
올여름 개봉작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A급 스타들이나 영화계 밖 인물의 카메오 출연이 두드러졌다”고 분석하며 “영화에 관한 소소한 이야깃거리가 되다 보니, 홍보할 때도 좋고, 호기심에 찬 관객들을 불러들이는 효과도 있어서 카메오 출연이 점점 늘어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배우들도 카메오 출연을 반긴다”라면서 “공백기가 길었던 배우가 잠시 얼굴을 내밀면서 반가움을 준다든지, 감독이나 제작자와의 의리로 출연한다든지 하는 사례가 많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