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요금 120만 원. 요즘 같은 무더위에 누진세 탓으로 ‘전기료 폭탄’을 맞은 것도 아니고, ‘물 폭탄’도 이런 물 폭탄이 없다. 서울 신림동 낡고 낡은 고시촌, 혼자 고시공부를 하면서 지내는 아들이 물 120만 원어치를 썼다고? 갑자기 걸려온 아들의 전화에 ‘아줌마의 촉’이 발동한다. “우리 ‘이판(사)’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어.”
미경이 아들이 사는 다 쓰러져 가는 고시원에 도착한 때는 사법고시 2차 시험 닷새 전. 아들에게 살갑게 다가가지만 시험이 코앞에 닥쳐 예민한 아들은 “그냥 돈만 빨리 내주고 돌아가시라”고 엄마의 등을 떠민다. 급기야는 ‘이판’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화도 낸다. “변호사 돼서 로펌 들어갈 것”이라고. “판사가 제일 높은 거 아니냐”고 묻는 엄마에게 아들은 “돈 많이 버는 게 제일 높은 거야”라고 쏘아붙인다. 다음날 엄마는 아들의 호칭을 “이변(호사)”으로 바꾼다.
아들의 만류에도 미경은 수도요금 120만 원의 비밀을 파헤치고 나선다. 고시원 관리사무소에 가서 따져보기도,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아들과 같은 고시원에 사는 학생들을 우선 공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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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말고 게임 폐인이 되어버린 402호 진숙(이솜), 1차에서 떨어져 2차 문턱에도 못 가보고 고시생을 관찰하며 한량 같은 하루를 보내는 301호 덕구(백수장), 사법고시 2차에서 열 번이나 떨어진 ‘십시’ 고시생 403호 하준(허정도)에게 하나씩 힌트를 얻으면서 사건의 진실에 다가간다. ‘개같이 태어났다’라는 뜻으로 스스로 이름을 지었다는 지하 101호 개태(조복래)는 스스럼 없이 정을 주는 미경에게 점차 마음을 열고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준다.
범죄의 ‘촉’을 느끼고 사건을 파헤치는 미경을 중심으로 영화는 종종 긴장감 있는 장면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고시촌을 맴도는 청춘들을 담아낸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고시전문가 덕구가 읊어내는 ‘고시삼자 동락설(고시에 떨어지면 돈, 여자, 친구도 떨어진다)’, ‘십시(2차에서 10번 떨어진 고시생을 십시일반 도와야 한다는 뜻)’, ‘월식(한 달간 조식, 중식, 석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방식)’ 등 고시 은어들에서 고시촌의 암울한 분위기가 짙어진다. “검사 와이프 만들어주겠다”고 선언하고 아내와 떨어져 고시촌에 들어온지 10년도 훌쩍 지난 하준의 사연도 딱하다.
따듯한 ‘오지라퍼’ 미경, 소같은 눈을 가진 개태, 지질한 말더듬이 같지만 반전 매력(?)을 지닌 덕구 등의 캐릭터가 분위기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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