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②] 송강호, “미묘한 심리변화, 흔들리는 동공…관객에게 전달되길” (인터뷰)

[헤럴드경제=이세진 기자] 저 사람의 정체는 무엇인가. ‘밀정’의 시작부터 배우 송강호(51)가 연기한 ‘이정출’의 속내가 복잡해 보인다.

한때 상해 임시정부에서 일했지만 지금은 일본 경찰이 된 그. 이정출은 독립운동을 하다 궁지에 몰린 옛 동료를 마주하고 흔들리는 눈빛을 내비친다. 일본 경찰에서 “쏘지 마라”고 소리치고, 옛 동료에게는 “목숨은 부지해야지”하고 설득한다. 관객들은 혼란스럽다. ‘저 사람이 밀정(스파이)인가?’

“처음엔 이정출이 어떤 사람인지 감이 잘 안 잡히잖아요. 시대가 낳은 풍경 같아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한 가지의 신념, 한 가지의 모습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복잡하고 격변의 시대였던 거죠.”

[사진= 영화 ‘밀정’에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 (워너브라더스 제공)]

‘밀정’ 개봉을 앞두고 만난 송강호는 자신이 연기한 인물을 이처럼 설명했다. “복잡다단한 사람”. 이정출은 자신에게 몰아치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때그때의 곤경을 모면하기 위해 다른 선택을 이어나가는 인물이다. 기본적으로는 선하고, 조국을 등졌다는 마음의 짐과 ‘그래도 목숨은 건져야지’ 하는 생존본능이 공존한다. 

[사진= 영화 ‘밀정’에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 (워너브라더스 제공)]

송강호라는 ‘대배우’의 미묘한 표정 변화, 말투, 심지어는 뒷모습까지, 이정출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분명히 흑백논리로 따지자면 친일파, ‘미운 놈’인데, 송강호가 연기하니 “뭔가 사정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김지운 감독께서 캐스팅하신 것 같아요. 확실한 이미지가 있는 배우가 이 역할을 했다면 ‘좋은 놈일 거다’ ‘나쁜 놈일 거다’ 딱 판단이 될 텐데, 송강호가 하면 혼란이 오고 역할에 대해 확인하고 싶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요.”

[사진= 영화 ‘밀정’에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 (워너브라더스 제공)]

김지운 감독과는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에 이은 네 번째 협업이다. 김 감독이 내민 시나리오는 다 하는 걸까. “꼭 그렇지는 않지만 거절한 작품도 없다”고 말했다.

“일제시대를 바라보는 ‘밀정’의 시선에 새로움을 느꼈어요. 미술로 치면 붉은색, 검은색, 노란색도 아니고, 회색으로 조망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그 시대를 살았던 인물의 내면을 바라보면 그런 색이었을 것 같고, 상당히 새롭고 신선한 접근이라고 생각했죠.”

흔히 말하는 ‘적 아니면 동지’ 같은 이분법을 대지 않았다는 것도 매력이었다고 했다. “구도 안에서 한 인물이 혼란스러워하고 생존이라는 현실적 문제를 어떻게 헤쳐나가는지”가 “밀정만이 가진 감성”이라고 했다. 

[사진= 영화 ‘밀정’에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 (워너브라더스 제공)]

그 시대도 사람이 사는 시대였던 만큼,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보단 개인의 삶에 얽힌 질곡을 담아내는 쪽으로 예술 작품들이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도 했다.

영화에서 이정출은 자의 반 타의 반 정채산(이병헌)과 김우진(공유)가 이끄는 무장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을 돕게 된다. 밀정이 되기로 한 이유가 “관객들에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이야기로 흘렀다.

“얼마든지 영화 속에 계기와 사건을 만들어서 관객들이 ‘아 이 사람이 그래서 변절했고 그래서 이편이 됐구나’라고 생각하도록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그 시대를 관통했던 사람들의 생각, 고통 아픔들이 ‘변절’이라는 느낌으로만 귀결되기 때문에 얼마나 피상적이고 얕아 보일까요. 한 사람 안에서 고뇌와 감정의 소용돌이가 켜켜이 쌓여가는 게 사람의 인생이 아니겠느냐는 거에요.”

[사진= 영화 ‘밀정’에서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을 연기한 송강호 (워너브라더스 제공)]

시대의 큰 그림을 그리고자 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작은 사건’을 일부러 만들려 하지 않은 것이 김지운 감독의 의도라는 이야기다. 그 특별한 계기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물을 다루는 것이 연기자로서는 적잖이 까다로웠을 테다.

“확실한 사건과 확실한 노선이 있는 사람 같으면 강력한 표현 방법을 생각해서 연기했을 텐데, 이정출 캐릭터로는 미묘한 심리 변화나 흔들리는 동공, 이런 작은 표현만이 가능했어요. 관객분들에게 어떻게 통할 수 있을까…. 그 부분이 어려웠지만, 또 매력이기도 했어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8년 만에 영화에서 함께한 배우 이병헌과의 호흡도 좋았다고 했다. 이정출과 정채산이 만나는 장면은 영화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역할을 한다. 큰 술통을 두고 잔을 기울이며 얼큰히 취한 모습들이 영화에 웃음기를 첨가한다.

“이병헌 씨는 워낙 친하고요, 오랜만에 같이 연기한 것이 개인적으론 굉장히 재밌었어요. 더 유머러스한 요소가 있었는데도 감독님께서 절제하셨어요. 그 모습을 보고 인물의 본질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둘의 만남을 연출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도 그는 현재 새 영화를 촬영 중이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65퍼센트 정도 촬영이 진행됐다. ‘택시운전사’를 마치면 바로 원신연 감독의 ‘제5열’ 촬영에 들어간다.

그는 “다작을 하는 배우는 아니다”라고 했지만 관객 입장에선 송강호의 영화가 자주 찾아오는 것이 반갑다. “마땅한 작품과 매치가 안 되면 하고 싶어도 못 하는 게 이 일인데, 자연스럽게 다작하는 기간과 쉬는 기간 주기가 돌아오는 것 같아요.”

jin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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