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대중문화비평] 올곧은 ‘구르미’ 진영…기득권 정치에 던지는 ‘섬세한 침묵의 소리’

키다리 순정파 꽃선비 ‘김윤성’역
아이돌 가수지만 연기로 존재감 과시

名家영광보다 부패권력 구태 벗어나
‘정치적 올바름’ 실천 캐릭터 매력

KBS 월화극 ‘구르미 그린 달빛’이 18일 밤 방송되는 18회만을 남겨놓고 있다. 과연 조선 청춘 5인방인 이영(박보검), 홍라온(김유정), 김윤성(진영), 조하연(채수빈), 김병연(곽동연)은 꽃길 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구르미 그린 달빛’은 가볍기만 한 사극이 아니다. 이영과 라온은 ‘궁퍼스(궁 캠퍼스) 커플’이라는 애칭이 붙을 정도로 풋풋하고 설레는 궁중 로맨스만 펼쳐온 게 아니다.

왕세자인 박보검은 부패한 보수 기득권 세력을 누르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실현시켜야 하고, 역적으로 몰린 홍경래(정해균)의 여식인 김유정(홍라온)과도 사랑을 맺어야 하는 버거운 현실이 놓여있다. 비극적 운명일 수 있는 이런 위기에서 휘몰아치는 엔딩으로 이를 어떨게 해결할지 궁금하다.

박보검과 김유정의 예쁘고 귀여운 케미는 이 드라마를 끌고가는 가장 중요한 엔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김윤성 역을 연기하는 진영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의 존재감은 넘칠 정도다. 그가 멋있는 이유는 외모와 연기때문만은 아니다.

진영은 이 드라마에서 김유정을 짝사랑하는 키다리 순정파 꽃선비 캐릭터를 잘 만들어냈다. 아이돌 가수지만 한단계씩 연기를 쌓아올려온 덕분에 과잉 없이 안정된 연기를 펼쳐 캐릭터에 대한 몰입도를 높였다.


이번에는 단순히 박보검과 싸랑싸움 하다 밀려나는 역할이 아니다. 진영이 연기하는 김윤성은 보수 기득권의 정점에 있는 자제임에도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려는 젊은이다. 무소불위의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이 이를 내려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윤성은 할아버지인 최고권력자 영의정 김헌(천호진)이 “고작 역적 딸(홍라온)을 사랑하는 것이냐. 이런 못난 놈 같으니라고. 여자는 얼마든지 있다”라고 말하자 당당하게 할아버지에게 밀리지않고 맞설 수 있는 담대함을 지니고 있다. 윤성은 파르르떨리는 눈빛으로 “저는 조악하고 천박하더라도 저만의 그림을 그리며 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의 16회는 사회성 짙은 드라마의 모습을 보였다. 갓병연(곽동연)은 친구인 세자(박보검)와 홍라온을 모두 살리기 위해 세자에게 칼을 겨누어야 했다.

또 홍라온의 아버지인 홍경래는 백성을 위한 정치만이 아닌 백성에 의한 정치를 설파했다. 이를 위해 백성이 내린 왕은 자신과 백성을 똑같이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김윤성은 보수 기득층중에서도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역적의 여식 홍라온이라는 존재를 발설하려는 중전을 아기 바꿔치기라는 약점을 잡아 겁박한다.

김윤성은 세자(박보검)보다 훨씬 뛰어난 정보력을 항상 올바른 곳에다 쓴다. 윤성은 궁전의 수사책임자로는 적격이다. 모든 정보는 그가 가장 먼저 파악한다. 정보를 가장 빨리 파악하고 그 정보를 온당한 곳에 쓰는 것처럼 합당한 공무집행은 없을 것이다.

‘홍내관’ 홍라온이 사실은 여자이며 홍경래의 여식이라는 정체를 먼저 알았고, 중전 김씨(한수연)가 자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분만시 딸을 아들로 바꿔치기한 사실도 윤성이 가장 먼저 알아냈다. 그래서 네티즌들은 그를 ‘프로염탐러’라고 불렀다.

윤성은 자신이 짝사랑하는 여인인 홍라온의 정체가 탄로나기 시작하자 홍라온을 궁에서 탈출시켰다. 라온의 정보를 알고 있는 자객을 제거시킨 것도 윤성이다.

진영이 연기하는 김윤성의 매력은 멋있게 짝사랑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아쉬울 것 없는 권력층 자제가 할아버지의 부패권력의 구태를 손쉽게 물려받아 쉽게 살려고 하지 않으려는 데서 나온다. 할아버지 김씨 가문을 이어받는 걸 오히려 수치라고 생각한다. 편안한 삶에 안주하지 않았고, 부정과 부조리, 불의와도 손을 잡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이 정의인지에 대한 많은 고심끝에 단단한 생각이 자리잡을 수 있었다.

진영은 라온(김유정)이 “세자저하 배필이 다 정해지고 이제 혼례식만 남았다”는 그녀 어머니(김여진)의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힘없이 앉아있자 “우십시오. 기대도, 착각도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애틋한 순정을 드러내며 짝사랑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던 ‘멘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윤성이 멋있는 것은 그가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진영은 그런 김윤성을 무리 없이 물 흘러가듯 잘 끌고가고 있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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