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런 드라마가 중반 이후 시청률이 두자리수를 기록하며 1위에 올라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소소함의 승리인지, 착함의 성공인지, 아니면 평범함의 성공인지, 소박한 상투성을 통한 위안인지 시청자의 반응에는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남자주인공인 서인국은 처음 ‘쇼핑왕 루이’ 대본을 받고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기억상실증과 재벌 2세, 시골에서 상경한 처녀와 재벌 2세 남자와의 만남. 진부한 설정 같았다. 무엇보다 재벌2세 이미지가 싫었다고 했다.
“그래서 시각적인 걸 고민했다. 루이는 재벌이지만 기억을 잃어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의 인생을 표현하는데, 뭔가 독특한 톤이 재미요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표현하는 방식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다. 눈을 자주 깜박거리고, 손도 둘 데를 몰라 불안한 인물로 설정했다. 그런 루이가 강원도 사투리를 쓰는 처녀 복실이(남지현)을 만나, 조금 다른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제가 몸에 파스를 붙인 채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아기자기한 CG 등 웃음을 줄만한 요소들이 있기는 했다.”
서인국은 뿌듯하면서 시청자에게 감사하다고 했다. 처음에는 소재도 진부하다고 했고 스포트라이트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청률이 5%대로 출발한 후 떨어진 적이 거의 없었다. 10%까지 넘겼으니 뿌듯할 만 했다.
“저도 시청률 10%를 넘긴 게 재미있었다. 그 비결은 아무 생각 없이 응원하고, 웃을 수 있는 드라마라는 점이 아닐까. 응원 해가면서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요즘 상황에서 재미를 줄 수 있는 코드인 것 같다. 드라마를 보면서 많은 분이 웃었으면 했다. 한마디로 힐링드라마이고, 청정드라마였다.”
서인국이 연기했던 루이는 재벌 할머니 밑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집사가 해주는 대로 살아 사회성이 결여된 캐릭터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유일한 수단이 쇼핑이 된 것이다.
“루이가 물건을 보면서 말을 거는 장면이 그런 것이다. 김집사가 하도 날 따라다녀 친구를 사귀지 못해 물건을 친구로 만들었다. 루이가 고복실(남지현)을 만나면서 쇼핑은 거의 하지 않는다. 루이의 정체성을 확인해줄 게 필요했고, 그게 쇼핑이었다. 프랑스 촬영에서 개인적으로 쇼핑을 못했다. 촬영지에 있는 저택은 의자도 클래식이라 쉽게 앉지 못하게 해 눈치를 보면서 촬영했다.”
서인국은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장면이 뭉클했다고 했다. 단 한 장면으로 많은 걸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루이가 기억을 되찾아 할머니를 만난 이후, 누워있는 할머니 앞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루이 집에 있었다. 할머니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끼는 듯했다. 집사는 너무 북적거리면 사람들을 내보낼까요 하고 할머니에게 묻자 할머니는 ‘아니다. 집이 북적거리네. 지금 너무 행복하다’고 말하고 바로 돌아가셨다.”
서인국은 사람들이 주변의 소중함을 너무 잊고 지내는 상황을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낯선 사람에게는 최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대하는 우리들의 습성에 대한 에피소드다. 서인국은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놓치고 있던 걸 찾으면 더 좋지 않나? 저도 주변을 둘러보게 되더라”고 전했다.
서인국은 남지현과 케미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정도로 좋았다. 나이 차이는 7~8살 이고 서로 친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지현이가 나보다 어리지만 13년차 배우다. 지현에게 무조건 말을 놓아라고 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만들고 대화를 많이 했다. 지현이는 깊이가 있는 배우라고 생각한다. 사투리를 준비해왔으며 톤이 바뀌면 사람이 확 달라졌다. 나는 거지 분장 등 망가짐을 즐긴다. 우리 두사람의 케미는 지현의 연구 자세도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서인국이 ‘38사기동대’와 ‘쇼핑왕 루이’가 연속으로 잘 됐지만, 항상 잘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시청률이 안나와도 자책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럴 때는 분위기 띄우기 담당이다. ‘정글의 법칙’에 갔을 때도 자연스럽게 주위 사람들을 업시키는 방법을 아는 듯 했다.
서인국은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해 착실히 경력을 쌓았고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응답하라’ 시리즈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차기작들이 부진하다는 ‘응답의 저주’를 깬 유일한 배우다. 그는 “20대에는 일만 했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잘 해온 것 같다. 사랑받고 있다. 군대를 가야하지만 일 할 기회도 더 많이 주어졌다”고 했다.
2009년 ‘슈퍼스타K’ 시즌1 우승으로 가수가 된 서인국이 배우로 나선 이유가 있었다.
“‘슈스케’ 후 가수를 하게됐다. 앨범을 만들었지만 들려드릴 방법이 없었다. 2년 동안 힘들었는데, 2012년 ‘사랑비’라는 드라마를 하게 됐다. 내가 감독에게 사투리로 하겠다고 했더니 그렇게 해보라고 하셨다. 이때 연기로 표현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됐고, 캐릭터에 미친 듯이 빠져들었다. 응어리가 풀어졌다. 연기는 탈출구였고 내 안의 것을 발견하는 느낌이었다. 지금은 연기의 무게 감에 숨어버리고 싶지만, 그 때는 설레었다.”
서인국은 연기에도 조금씩 물이 오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