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만 열광하던 色다른 소재 스크린 입성
부산행 1156만 관객 올 첫 1000만영화에
아가씨·연애담·밀정·동주도 호평
한국 관객에게 가장 친숙한 장르는 뭘까? 아마도 범죄물과 스릴러 혹은 코미디일 것이다. 수요가 안정적이기 때문에 영화제작자들이 선호하는 장르다. 하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매번 비슷한 이야기는 지겹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은 기념할만한 해다. 비주류로 치부되던 좀비, 동성애 등 생소한 소재가 관객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이던 시대극까지 가세했다. 병신년(丙申年) 극장가를 달군 키워드를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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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부산행’
2016년 첫 번째 키워드는 좀비다. 그간 한국 블록버스터에서는 시도되지 않았던, 다소 마이너 한 취급을 받던 좀비는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감독 연상호/제작 영화사 레드피터)과 만나 대세가 됐다. 누적 관객 수 1,156만 명을 돌파해 올해 첫 1,000만 영화가 된 것.
‘부산행’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최악의 재난 상황에서 부산행 KTX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그린다.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 좀비’란 단편을 기획하다가 소재를 분리시켜 애니메이션 ‘서울역’과 좀비물 ‘부산행’을 만들었다. ‘서울역’은 ‘부산행’과 연결되는 이야기로, 역이 아닌 KTX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나 기차에 매달리는 좀비 떼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이에 대해 연상호 감독은 “더미 60구를 사용해서 기차에 매달고, 좀비 분장을 한 배우들이 올라타는 식으로 연출했다”고 비하인드를 밝혔다. 또한 기괴한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해 무용가와 비보이 등을 동원했다.
동성애-‘아가씨’ ‘연애담’
비주류에 해당하는 동성애 코드 역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세계적인 거장 박찬욱 감독은 신작 ‘아가씨’(제작 모호필름, 용필름)에서 동성애를 전면으로 내세웠다. 1930년대 일제강점기 조선이 배경인 이 영화는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게 된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를 중심으로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인물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건 아가씨의 재산을 노리는 백작(하정우)의 사주를 받은 하녀 숙희(김태리)와 히데코다. 이들은 동성애 코드 활용은 물론, 파격적인 베드신까지 펼치며 한국 영화계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아가씨’는 429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독립영화에서는 이상희와 류선영 주연의 ‘연애담’(감독 이현주/제작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이 동성애 코드를 시도했다. 누구나 겪어본 일기장 속 보통의 연애를 윤주(이상희)와 지수(류선영)의 이야기로 그려낸 로맨스였다. 작위적인 설정을 배제하고, 동성애자들도 평범하게 연애하고 사랑한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그리면서 호평을 이끌어냈다.
애국심- ‘동주’‘밀정’
스테디셀러인 일제강점기와 애국심 소재 역시 강세였다. 지난 2월 17일 개봉한 ‘동주’가 시작이었다. 윤동주(강하늘) 시인의 삶과 송몽규(박정민) 선생의 일대기를 조명하고자 제작된 작품이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이지만, 영화에 투입된 제작비는 6억원에 불과했다.
윤동주 시인의 인생을 그린 최초의 영화는 관객들에게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시를 통해 일제강점기 민족이 느낀 상실과 아픔을 노래한 그의 삶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독립운동가 송몽규 선생의 존재도 부각시켰다.
‘동주’는 누적관객 수 117만 명이라는, 저예산 영화로서는 기록적인 흥행에 성공했다. 또한 송몽규 역을 연기한 박정민이란 늦깎이 신예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밀정’은 1920년대 말, 일제 주요 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렸다. ‘밀정’은 새로운 시도가 돋보였다. 일제강점기를 소련과 미국의 냉전시대처럼 스파이들의 활동 무대로 풀어낸 것이다. 회색 지대에 선 인간인 이정출(송강호)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 듯한 의뭉스러움과 신비로운 분위기는 그간 이 시기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김지운 감독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영상미가 더해졌다. 의열단의 목숨을 건 독립운동을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애국심 코드를 활용하기도 했다. 누적 관객 수 750만 명을 돌파하며, 추석 연휴 극장가 승자가 됐다.
성선해 기자/popnews@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