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고싶지 않은…김은숙(드라마 ‘도깨비’ 작가)의 ‘도깨비 마법’

인간의 삶 통찰하는 탄탄한 서사구조
판타지 가벼움 누르는 캐릭터 무게감
숙성된 작품 느낌…작가 경지 느껴져
공유·김고은 전작 넘어선 연기도 한몫

tvN은 금요일 밤에 강하다. ‘꽃보다’ ‘삼시세끼’ 시리즈 등 나영석의 예능과 ‘응답’ 시리즈의 신원호의 드라마, 김원석 PD의 ‘시그널’로 이미 금요일 파워를 구축했다.

이제 tvN의 금요일은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로 초강력이 됐다. 드라마 한 편을 보려고 금요일 밤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심정, 한 회당 85분을 할지, 62분을 할지 궁금해하는 시청자들.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도깨비’의 마력에 제대로 빠진듯 하다. 중국에서는 ‘도깨비’의 불법 동영상이 인기이고, 중화권 톱스타 서기는 SNS에 “‘ ‘도깨비’의 모든 장면이 가슴 뛰게 아름답다”며 대놓고 ‘도깨비’에 빠졌음을 고백했다. 


김은숙 작가는 ‘도깨비’ 제작발표회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이전 작품에서 서사의 뒷심이 약한 것은 전적으로 작가 잘못이다.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게 다양하게 넣었다. ‘어, 이런 것도 김은숙이가 쓰네’라는 반응이 나오도록 하겠다.”

정말로 크게 작정을 한 모양이다. ‘도깨비’는 급조가 아니라 숙성된 작품의 느낌이 났다. 캐나다 관광청 등 PPL의 모범사례로도 꼽힐 만했다. 공유는 ‘커피프린스’ 이상의 드라마를 만나기 어려울 줄 알았는데, 그걸 넘어서는 분위기다.

김고은도 유정 선배를 고민 반, 즐거움 반으로 대하던 ‘치인트’의 홍설 캐릭터보다 더 잘 나오기 힘들 것 같았지만, 여고생 지은탁은 너무 귀엽고 무척 자연스럽다.

김은숙 작가가 쓰는 ‘도깨비’의 힘은 서사 구조, 그리고 그 속 인물들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 아름다운 그림(미장센) 등에서 나온다.

판타지 로맨스로서의 설정은 ‘도깨비’나 SBS 수목극 ‘푸른 바다의 전설’이 유사하다. 우리 역사와 설화 처럼 보편적인 이야기를 끌고왔다. 그것을 끌고 오는 과정에서 김은숙 작가의 공력이 나타난다. 인어 이야기를 설정한 ‘푸른 바다~’가 좀 더 코믹하다면, ‘도깨비’는 무게감이 있다.

‘도깨비’의 이야기는 가볍다. 고려말과 현대를 연결시키는 판타지와 로코는 가볍고 웹툰스럽다. 판타지 형식이지만 현대에서의 일반적인 모습은 일상웹툰과 비슷하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판타지, 로코 스타일에는 무게가 안느껴지는데, ‘도깨비’ 서사의 비극성이 무게감을 제공한다. 김은숙 작가의 연륜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려시대와 현대를 사는, 939살로 추정되는 도깨비 김신(공유) 캐릭터에 비극성과 비장미를 넣어 가벼움을 눌러준다. 김신은 자신으로 인해 그 많은 부하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놓이고, 자신을 죽게만든 왕에 대한 분노를 떠올린다. 하지만 천 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것은 덧없다. ‘도깨비’ 캐릭터들은 과거와 현재가 다르다. 과거의 나쁜 사람이 현재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시청자들은 잘 모른다. 유추하고 추정할 뿐이다. ‘푸른 바다~’는 캐릭터의 선악(인연)이 그대로 조선에서 현재로 수평이동하는데 반해, ‘도깨비’는 큰 틀은 유지하지만 작은 틀이 흥미롭다.

도깨비가 지은탁을 괴롭힌 그 가족에게 ‘벌’을 줘야 할 것 같은데, ‘금’을 준다.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지은탁 이모 식구들은 금은방을 찾아 금괴를 팔려했지만, 금은방 주인의 신고로 경찰로 인계됐다. 이모 식구들은 “이 금괴는 조카 서랍에서 가지고 온 거다”라고 말하자 경찰은 “아까 금은방에서는 왜 유산으로 물려받았다고 거짓말했냐?”고 물었다. 하지만 이모가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냐. 내가 내 유산이라고 한 적이 있냐. 이건 걔 엄마, 내 언니가 남기고 간거다”라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국정농단 청문회에 나온 증인의 발뺌이 오버랩된다.

‘도깨비’의 공유와 김고은의 로맨스는 역설적이고 기구하다. 불멸의 삶을 끝내기 위해 인간 신부가 필요한 도깨비 앞에 ‘도깨비 신부’라 주장하는 소녀의 등장, 한 사람은 한 사람의 삶을 끝내야 하고, 그래야 그 사람은 평안하게 불멸의 삶을 끝낼 수 있고, 도깨비는 왜 불로장생을 원하지 않고, 불멸에 대해 괴로워하는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진다.

기억상실증 저승사자(이동욱)의 ‘망자 가이드’도 기존에 있는 설정이지만 이채롭다. 환자는 극적으로 살려내고 과로로 죽은 의사의 이야기는 죽음와 인간의 가치 등을 생각케 한다.

결국 ‘도깨비’는 939살 도깨비 김신과 저승사자, 도깨비 신부 지은탁으로 현실과 죽음을 그려내며 환생과 윤회를 말하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간의 전반적인 삶까지의 통찰을 담아내고 있다. 이로써 엄마와 딸이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됐다. 그동안 김은숙 작가의 작품은 시청률로 크게 성공했지만 대사발의 힘이 컸다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수년간 숙성시켜 만든 서사와 인물의 무게감은 김은숙 작가가 경지에 올랐음을 잘 보여준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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