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12일만에 30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질주하는 재난영화 ‘판도라’에서 남자주인공 김남길이 한 이 말은 영화 전체를 응축하는 대사다.
‘판도라’는 지진과 원전폭발로 벌어진 초유의 재난 속에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나선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김남길은 원전에서 일하는 소시민 재혁 역을 맡아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재난에 맞서야만 하는 상황을 연기했다.
“영웅담은 아니다. 재혁이가 마지막에 산화하는데, 나라를 구하는 게 아니라 가족을 구하기 위함이다. 마지막에 한 말도한번도 주위사람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던 경상도 철부지 막내가 한 본능적인 말이니 영웅화되지 말아야 한다.”
김남길은 중반 출연분량이 적어졌지만 후반 두려움이 극대화됐을 때의 감정 연기와 스스로 산화하기 전 “기억해달라” 등 현실을 방불케 하는 대사는 큰 공감을 샀다. 특히 김한길 혼자 15분간 연기하는 마지막 장면은 자신이 잘못 연기하면 단순 재난영화로 그칠 것이라고 판단해 촬영 이틀전부터 식사도 하지 않고 죽는 장면을 깊게 고민하고 폐쇄공포증까지 느껴가며 감정연기를 완성했다. “김남길이 마지막 연기를 너무 잘해서 영화가 더 서러웠다”는 말도 나왔다.
김남길은 “병원에 있는 재혁이 억울하고 분한데, 왜 우리가 (2차 폭발을 막기위해 재난 현장으로) 들어가야 하는가 라고 말하는 장면은 우리 국민들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내 연기를 내가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도 연기하면서 현실적인 문제를 실감했을 것이다. 자연 재앙은 어쩔 수 없지만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더 큰 재난이 발생할 수 있음을 이 영화는 경고한다. 그는 “기껏 재난 영화 한 편 찍고 원자력 발전소에 대한 논의를 하는 건 주제 넘지만, 독일이 원자력을 다른 에너지로 돌려 미래에너지로 삼는다거나 세계 각국의 에너지는 어떻게 개발되고 있는지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했다.
“재난문제가 터지면 우리 개인 각자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나라인가가 ‘판도라’가 보여주는 부분이다. 관계자들은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등 안전불감증 얘기가 영화속에 있다.”
하지만 김남길은 이 영화가 사회고발 영화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에는 경계한다. 시국을 영화 홍보에 활용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 이 영화는 경주 부근 지진이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하기 훨씬 이전에 촬영을 완료했다.
“얼마 전 지진이 나고는 조심스러웠다. 요즘 개봉하는 게 맞는건지? 실제 지진을 경험하신 남쪽 지방 분들에게 혹시라도 트라우마로 작용한다면? 이런 걱정을 했다.”
김남길은 “안전불감증을 보여주지만, 단순히 재난이 무섭다는 게 아니라 준비하자는 게 이 영화의 메시지”라고 말했다.
누구나 재난 등 문제가 발생하면 우리를 보호해줄 공적 시스템, 컨트롤 타워가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공권력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작동하지 않는다면, 극중 행안부 장관 역을 맡은 주진모처럼 “그런 시스템은 없습니다”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결해야할지를 이 영화는 생각하게 한다.
김남길은 정진영 김명민 이경영 강신일 주진모 등 오랜 경력의 선배들이 현장에 있는 것만으로도 배우는 게 많았다고 했다. 서울토박이인 그는 경상도 사투리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김남길은 영화 ‘모던보이’ ‘미인도’ ‘폭풍전야’ ‘해적’ ‘무뢰한’ ‘도리화가’ 등과 드라마 ‘선덕여왕’ ‘나쁜 남자’ ‘상어’ 등에 출연하며 매번 자신만의 색깔을 확고히 해왔다. ‘선덕여왕’에서 비담으로 중간 투입됐지만 비밀병기로 크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수염을 기르는 것과 면도한 것의 이미지 차이가 커, 이것만으로도 연기 스펙트럼을 크게 넓힐 수 있는 배우다.
김남길은 드라마 ‘나쁜 남자‘ 상어’. 영화 ‘해적‘처럼 수염은 붙이면 섹시미와 퇴폐미가 공존하는 마초 또는 매력적인 남자가 된다. 수염을 떼면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져 진지하고 잘 생긴 청년 또는 젠틀맨으로 바뀐다.
“나의 롤모델은 량챠오웨이(양조위)나 장첸이었다. 연기 초기 이미지 구축때 수염을 기른 거다. 수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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