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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이래 25년동안 1,0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가요계 역사의 한 획을 그었고 1994년, 95년, 96년, 3년 연속 KBS 가요대상을 수상한 ‘국민가수’김건모. 그는 요사이 SBS의 예능 프로인 ‘미운 우리 새끼’를 통해 인기 역주행 중이며 HOT 토니 안의 엄마가 사랑하는 남자가 되었다.
지난 해 데뷔 25주년 기념 콘서트 때 지독한 독감에 걸렸음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혼신을 다해 콘서트를 마쳤고 늦깎이 예능인이 되어 SBS 연예 대상 시상식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했음에도 정작 수상하러 나오지도 못해서 서장훈이 대리 수상을 하기도 했다. 소주병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고 타조알로 요리를 하는 등 각종 기행을 일삼는 반백살 쉰 김건모~!
내가 그를 처음 본 것은 1992년 신승훈의 콘서트 장이었다. 게스트로 잠깐 등장해서 사라진 김건모를 두고 그때만 해도 그가 한국 기네스 북에 최고 음반 판매량(1995년 3집 잘못된 만남 280만장)을 기록할 가수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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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시 미국으로 이민왔다가 마땅하게 할 일을 찾지 못하고 3주만에 한화 9만원을 들고 한국으로 도망치듯 갔을 때였다. 이벤트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 했던 시기였는데 그 후 다시 일을 시작하고 1995년 잘못된 만남으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김건모와 S그룹 행사에서 직접 만나게 되었다.
당시 신승훈과 박미경 등의 매니저였던 사맹석씨는 신승훈과 김건모 음반 기획과 매니저로 성공하여 강남에 건물을 샀다. 엘리베이터 없는 4층 건물이었고 핸디캡인 나를 그 빌딩으로 오라고 해서 그 4층 건물을 오르락 내리락하며 얼마나 힘들었던지.
여하튼 김건모는 S그룹에서 직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마련한 10개 도시 순회 공연 ‘사랑의 축제’에 4회 출연했다.당시 최고의 개런티인 1회 5백만원씩 총 2천만원을 받았다. 1995년 부산에서 처음 만난 그는 내가 서울예대 선배라고 하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서 90도로 인사를 하며 예의를 갖췄다. 내가 아는 사람에게 줘야 한다고 사인을 부탁하자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더니 거기에 멋지게 사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상의 탈의를 한 알몸이 되고 말았는데 그 순간 나는 그가 ‘버릇없고 건방진 연예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편견이라 믿게됐다. 당시 ‘핑계’의 음반판매량 180만장, ‘잘못된 만남’ 250만장이라는 놀라운 판매기록을 보유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인 그가 내게 베푼 호의는 ‘따뜻한 심성과 의리 있는’ 인간성을 대변해주는 것이라 여기며 지금까지도 고맙게 생각한다.
몇해 전 ‘나는 가수다’에서 립스틱을 바르고 하차하고 난 후 마음 고생을 많이 했던 김건모는 “자꾸 인기 있던 시절이 생각 나서 일하기 싫었던 적이 있다.인기는 당연히 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참 힘들었다. 그런데 선배 가수 김수철 형이 ‘건모야 인기,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내려올 때 잘 내려와야 한다’고 조언해주는 말을 듣고 인기를 포기하니 마음이 편해지고 부담이 줄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데뷔 25년간 1,0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고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탁월한 가창 실력을 자랑하는 천하의 김건모가 ‘지금까지 진지한 연애는 딱 한 번밖에 안했고 실제로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으며 말을 잘 못하며 일로 만나는 건 괜찮지만 사적으로 만나면 할 이야기도 없고 서먹서먹 하다’는데…
그런데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정확한 소식통에 의하면 그는 여자들에게도 인기가 많고 그 역시 그 상황을 즐기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아 ~! 그러니까 ‘진지한 만남’을 말하는 것이구나, ‘잘못된 만남’ 말고…. 그래서 요즈음 토니 엄마랑 사랑을 나누고 있군. ㅋㅋ 아직 결혼을 못한 ‘핑계’를 대며…. 그래도 내 후배…요즘 보니 참 좋다…건승하길 바래요…쉰건모씨~!
●엘리카 박(Elika Park·한국명 희성)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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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영 11′이라는 MBC-TV 쇼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데뷔. 방송작가 생활을 하며 여러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연예 관련 칼럼과 뒷얘기를 썼다.1990년대 후반 LA에 정착한 후에도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집필활동 중이다. 서울예대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