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카의 연예시대] 이 시대의 진정한 가객 송창식과 조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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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같이 개량한복 차림으로 노래하는 송창식씨

지난 2011년 7월 23일과 24일 LA 슈라인 오디토리움에서 ‘세시봉 콘서트’가 열렸다. 그런데 윤형주 김세환 조영남씨만 왔고 송창식씨의 모습은 볼 수가 없었다.

“1만 일을 목표로 매일 방 안을 걸어서 빙빙 도는 운동을 수십년째 해왔다. 앞으로 2000일 정도 남았는데 미국 공연을 하면 시차 때문에 운동에 차질을 빚게 된다”라는 것이 송창식씨가 미국 공연을 못하는 이유였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욕을 바가지로 먹었을 법한데 송창식씨이기에 서운하지만 이해하는 듯, 그냥 넘어갔다. 왜냐하면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기인이니까.(좋은 의미에서)

내가 9살 무렵 초등학생 때 송창식씨는 의학도인 윤형주씨와 ‘트윈폴리오’라는 듀엣으로 TV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 나이였지만 ‘웨딩 케이크’ 와 ‘하얀 손수건’의 멜로디는 확실히 기억난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그는 솔로로 활동하고 있었고 나는 어느 새 열렬한 팬이 되어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면 공중전화 있는 곳으로 가서 송창식씨 집에 전화를 걸곤 했다. 한번도 통화는 못했지만.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그러니까 열혈 팬이 된 지 15년이 지난 어느 날, 잠실 올림픽 경기장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중학생 때부터 팬이었다’고 단 한마디밖에 나누지 못했지만 너무나 기뻤다. 그 후 1987년부터 S그룹의 행사로 ‘무주 구천동 (덕유산)’으로 10년 동안 매해 여름이면 만났는데 “이 행사에 출연하고 나야 1년이 또 지났구나…한다. 나는…” “저도 그래요”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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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개량 한복 차림으로 숙소에 일찍 도착해서 산나물이랑 맛난 된장국을 함께 먹었고 덕유산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왜 불러’, ‘고래사냥’, ‘피리 부는 사나이’ 등을 부르며 산자락에 앉아 열광하는 젊은 팬들을 압도했는데 야외 라이브 무대에서 최고의 가창력으로 노래를 부르는 최고의 가수로 기억된다. 제주도에 공연을 갔을 때였는데 매니저가 함께 오지 못하여 내가 돌봐드리게 되었다. 정말 그는 오후 4시에 일어났다. 그때 그분의 매니저는 고 박용하의 아버지인 상승기획 박승인 대표였다. 언제 어디나 내가 행사 출연을 부탁드리면 출연료에 관계없이 응해주셨던 박대표는 이제 뵐 수 없는 분이라서 더욱 생각이 난다. 고 박용하가 데뷔를 준비하던 때 두어 번 만난 적이 있는데 필자가 도미한 후 그는 한류 스타가 되었고 박승인대표는 송창식씨의 매니저 일을 그만 두었다고 했다.

송창식씨는 자신이 지켜야 하는 일상생활 때문에 오후 4시 전에는 아무리 출연료를 많이 준다고 해도 출연하지 않는 소신(?)을 고집했다. 그의 특이한 생활 패턴 때문에 불편해 하는 사람들은 좋은 의미에서든 아니든 기인이라고들 하지만 ‘자기 인생에 최선을 다하고 연습을 죽도록 하며 6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창력이 최고’인 송창식씨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가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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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 해외공연에 송창식씨가 참여하지 못하면 대타로 나서는 조영남씨.

작년에 그림 대작 논란에 따른 사기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가수 조영남씨는 6년전 세시봉 미주 공연 때 송창식씨를 대신해 출연했다. TV에서도 항상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언행을 하곤 하는데 실제로 행사장 무대에 세우고 나면 무슨 말을 할 지 알 수가 없어 불안에 떨곤 했던 기억이 난다. 한 TV에서는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노래 ‘황성옛터’를 부르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민족의 애환이 담긴 노래 ‘각설이 타령’을 부르기도 했다니 출연 섭외하던 당시 얼마나 힘이 들었을 지 상상이 가실지….

히트곡이라고는 ‘화개장터’, ‘내 고향 충청도’ 단 두 곡이었고 자신의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화개장터’를 부르며 자신을 추모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모란동백’이라는 신곡을 내놓았다. 그래도 대형 프로그램, 특집 프로그램에는 거의 고정으로 출연했던 그가 보여주는 방송에서의 모습은 실제 모습과 별반 다름이 없다. 매니저가 따로 없이 혼자서 활동했기 때문에 ‘혹시 출연을 펑크내면 어떻게 하나?’ 걱정스러워 유난히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전화를 많이 했다. 1995년 무렵 모그룹의 행사차 부산에 다녀오던 차 안에서 방송인 왕영은씨와 개그맨 이홍렬 씨에게 나를 가리키면서 “저 친구는 기동성이 없기 때문에(필자는 핸디캡임) 모든 게 준비돼야 안심하는 친구라서 출연 섭외부터 출연하는 날까지 전화를 무지 많이 한다. 다른 사람 같으면 귀찮아서 출연 안한다고 돈도 싫다고 할텐데 쟤라서 내가 이 밤에 부산까지 왔다 간다”라고 했다. 그저 보기에는 다소 무법자처럼 보이고 후배들에게 까칠하게 대하기도 하지만 내면에는 이렇듯 정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송창식씨와 조영남씨. 두 사람이 색깔은 다르지만 연예계의 기인이며 진정한 가객임에는 틀림이 없다.

엘리카 박

엘리카 박(Elika Park·한국명 희성)씨는

1982년 ‘영 11′이라는 MBC-TV 쇼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데뷔. 방송작가 생활을 하며 여러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연예 관련 칼럼과 뒷얘기를 썼다.1990년대 후반 LA에 정착한 후에도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집필활동 중이다. 서울예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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