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다시 미국생활 ‘자일랜 신화’ 스티브 김

“서울-LA 절반씩 머무르며 골프장 운영, 리조트 개발하며 새롭게 도전해요”

산타클라리타 소재 로빈슨 랜치 골프장 단독 오너십 확보 후 대규모 리노베이션

샌드 캐년 컨트리클럽으로 개명 1일 재개장…36홀 중 9개홀 대규모 럭셔리 리조트로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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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꼭 10년만이다. ‘자일랜의 신화’ 스티브 김이 다시 나타났다.

잠깐 다니러 왔다기엔 심상찮다. LA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위치한 고층 콘도 한채도 마련했다. 잠깐씩 머물겠다는 뜻에서 구한 임대(렌트)가 아니라 아예 사버렸다.

통신네트워크회사 자일랜을 프랑스 대기업 알카텔에 1999년 당시 가격으로 20억달러에 매각했던 인물이기에 콘도 한채 구입한 건 얘기거리가 안된다.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다고 떠날 때만해도 내가 다시 미국에서 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는데…”라며 씨익 웃는다.

2007년 1월 부인과 어린 세딸을 데리고 한국으로 역(逆)이민을 떠난 이후에도 수시로 미국을 다녀갔다. 어디까지나 ‘방문객’ 이었지, 일정 기간 살려는 ‘거주민’은 아니었다. 이번엔 생활 터전으로 콘도까지 구입했으니 반쯤 ‘재역(再逆)이민’한 셈이다.

●자일랜 매각 20억달러 거부된 뒤 한국으로 역이민…10년만에 미국서 다시 생활기반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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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정착한 초기만 해도 정말 좋았어요. 사계절 뚜렷하지, 도시는 활기가 넘치고, 사람들은 바쁘고…. 미국을 떠나오길 잘했다고 여겼는데, 요즘 한국은 정말 걱정스러워요”

최근 시국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입시와 사교육에 매여 있는 청소년들, 졸업해도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청년백수들, 연애할 열정도 없는 청춘들과 결혼해도 보육문제로 애를 낳지 않는다는 세태….

그는 영구귀국할 당시 동반했던 부인과 헤어지고 그 사이에서 얻은 세 딸은 진작 미국으로 되돌려 보냈다. ‘헬조선’이라는 한국의 망가진 교육시스템에 아이들을 맡겨둘 수 없는 노릇이었으리라. 그리고 지난해 초여름 무렵 미국에서 할 일까지 찾았다.

오래전 제이미슨 서비스의 부동산재벌 데이빗 리 회장과 공동투자했던 산타클라리타 소재 로빈슨 랜치 골프클럽의 지분을 전량 인수한 것이다. 지난 2000년에 개장한 로빈슨 랜치 골프클럽은 프라이빗클럽 수준의 퍼블릭 코스로 한때 남가주 최고의 그린으로 평가될 만큼 골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골프장 위탁운영의 결과는 해마다 100만달러씩 손실이 나는 만성적자였다.

“동업자도 메인비즈니스 때문에 바쁘고, 난 한국에 주로 있으니 골프장 운영을 위임받은 전문가라는 작자들이 경영을 엉망으로 했던 게지요. 더이상 방치해선 안되겠더군요.주인이 직접 손을 대야겠다 싶어서 데이빗 리 회장의 지분을 인수한 겁니다.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느낌도 열정을 생기게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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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은 캘리포니아 지역의 극심한 가뭄 탓에 물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누렇게 변해간 상태였다. 그래도 36개홀 가운데 마운틴 코스를 폐장하고 밸리코스 18홀만으로 운영하려던 참에 지난해 7월 말 인근 지역에 일명 ‘샌드파이어’로 불린 산불이 일어났다. 드라이빙 레인지에 번진 불길은 바람을 타고 밸리 코스 백 나인을 휩쓸어버렸다.

“직접 운영하려는데 산불이 덮쳤으니…그래도 직원들에게 이건 새로 싹 뜯어고칠 기회라고 위로하고 독려했어요. 도전! 내가 좋아하는 거 잖습니까”

400만달러를 투입하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에 착수했다. 36홀 가운데 27홀만 골프코스로 하고 나머지 9개홀이 차지하던 70에이커 부지는 객실 200여개의 호텔과 스파,레스토랑 등이 딸린 리조트로 개발하기로 했다. 당초 2월 초에 재개장하려던 계획은 지난 1월 20~22일 사이 쏟아진 폭우로 골프장 인근 샌드 캐년 지역에 산사태가 나면서 또 연기됐다. 골프장을 단독 인수하면서 가뭄과 산불, 홍수 등 자연 3재(災)를 모조리 겪었으니 단단히 액땜을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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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김씨가 단독 오너십을 갖고 1일 재개장한 로빈슨 랜치 골프클럽. 이제 샌드 캐년 컨트리클럽으로 이름을 바꿨다.<로빈슨랜치골프클럽 홈페이지>

 

“1일 밸리코스 18개홀을 개장하고, 한달 뒤 나머지 9개홀까지 오픈하게 되는 데 벌써부터 몇개의 토너먼트를 비롯, 예약 상황이 좋아 재개장 첫달부터 흑자를 기대할 만하다”라며 표정이 밝아진다.

골프코스 이름도 ‘샌드 캐년 컨트리클럽’으로 바꿨다.일부 코스의 레이아웃도 자신의 라운딩 경험을 살려 조금씩 직접 변화를 줬다. 그린피는 평일 $65, 주말 $85로 종전보다 20% 이상 낮췄지만 카트와 생수 서비스가 포함된 요금이어서 웬만한 시립골프장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퍼블릭 코스 그린피로 프라이빗 클럽 수준의 서비스를 지향한다’는 개장 당시의 모토를 유지하는 셈이다.

“이제 일년 중 절반은 LA에서 머무른다고 봐야죠. 골프장 운영과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에 매달려야 하니까요.”

●”희망없는 한국 사회에 실망했지만 청소년층 자신감 찾게하는 인성교육 사업 보람있어”

연중 나머지 절반은 물론 한국에서 그동안 펼쳐온 활동을 이어가야 한다. 2001년 설립한 ‘꿈희망미래 재단’ 이사장으로서 최근 7년새 굳게 뿌리내린 인성교육사업을 계속 확장해가야 한다. 한달에 10여차례에 달하는 강연요청을 소화해야 하고, 중고교와 대학, 나아가 군부대까지 찾아가는 인성 교육사업은 뭔지 모를 좌절감으로 희망을 잃어가는 한국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자존감과 자신감을 되찾아주는 일이라 몸이 열개라도 모자란다.

10만명 이상이 ‘꿈희망미래 재단’의 교육사업을 거쳐 한층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웹사이트(www.dhffn.com)에 남겨놓고 있다. 연변과 북한, 방글라데시, 아프리카 등에까지 장학사업과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다.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해준 미국에서도 한인청소년을 대상으로 인성개발 교육사업을 하고 싶지만 전문강사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열정과 보람에서 행복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연락하시라”는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래도 궁금한 것 한가지. 자일랜 매각으로 손에 쥔 몇십억달러의 재산은 그 사이 불어났을까, 줄어들었을까.

“결혼을 세번이나 했으니 많이 나눠줬잖습니까”

칠순을 삼년 남짓 남겨둔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동안(童顔)에 잠깐 웃음기가 사라지더니 금세 힘 있는 목소리로 덧붙인다.

“돈은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도 아니고, 죽을 때 가져갈 것도 아니라서 있는 만큼 좋은 일에 쓰면서 행복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껄껄~”

억만장자의 꿈을 남기고 떠났던 그는 많은 것을 비운 듯한 웃음과 함께, 그렇게 돌아왔다.

황덕준 기자

◆스티브 김씨는

경복중고와 서강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에 건너와 UCLA에서 정보통신학을 전공. 1984년 Fibermux Corp.를 창업해 광섬유 네트워킹 업계의 선도기업으로 키워 1991년 ADC Telecom에 5,400만 달러에 매각.

1993년 대기업에 컴퓨터 네트워킹 시스템을 제작하여 제공하는 자일랜(Xylan Corp.)을 창업, 3년 만에 나스닥에 상장하고 5년만에 연매출액 3억5천 만 달러 규모의 회사로 성장시켜 1999년 프랑스 Alcatel사에 20억 달러에 매각, ‘아시안 빌게이츠’ 라는 명성을 얻었다.

부와 성공을 고국에서 쓰고자 2001년 한국에 사회복지법인’꿈·희망·미래 재단’을 설립, 서울 및 연변에서 장학 및 복지사업, 복지관 수탁 운영, 북한과 방글라데시 등 제 3세계 지원을 하고 있다. 2007년 한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강연 및 청소년 인성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서울사이버대학교와 건양 사이버대학교 석좌교수로도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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