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카의 연예시대]차화연, 사랑과 야망의 영광을 다시 한번

엘리카의 연예시대

차화연 ‘사랑과 야망’의 영광을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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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일일 아침드라마 ‘아임 쏘리 강남구’로 주목받고 있는 차화연은 제 2회 미스 롯데 출신으로 1978년 TBC 공채로 데뷔, 87년 국민드라마로 큰 인기를 끌었던 MBC ‘사랑과 야망’ 에서 여주인공 미자 역할로 인기 정점에 올랐다. 드라마가 종영된 직후인 1988년 10살 연상의 사업가 최모씨와 일본에서 극비리에 결혼식을 올리며 연예계를 은퇴하더니 2008년 일일 드라마 ‘애자 언니 민자’로 20년만에 컴백했다.

필자와는 배우가 되기 훨씬 전 여중생 교복차림으로 처음 만났다. 풍문여중 1년 선배인 그녀의 학창시절은 다사다난했다. 활달한 성격에 예쁘장한 외모여서 북촌 안국동 계동 인근 남학교 학생들이 그녀를 가만 두지 않았던 것같다. 무용을 잘한다 싶더니 서울예고 무용과에 진학했고 졸업하던 1978년 TBC 공채 탤런트로 연예계에 입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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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 한동안 그녀의 배역은 가정부, 주인공의 친구, 다방에서 일하는 여자 등 그리 눈에 띠지 못했는데 오늘 날의 차화연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드라마 시청률의 전설로 불리는 ‘사랑과 야망’에서 여주인공 미자역을 너무나 완벽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그녀는 그 인기 절정의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드라마가 종영하자마자 연예계를 떠나 결혼했고 20년만에 다시 컴백했으며 이혼도 했다.

‘사랑과 야망’에 출연할 당시 인기가 하늘로 치솟고 있는 그녀를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도 같았다. 그런데 그녀는 필자를 기억하고 시간을 내서 인터뷰를 해주었다. 다시 중학생으로 돌아가서 ‘언니, 희성아’ 하면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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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그 인기 절정의 시기에 전도 유망한 미래를 포기하고 결혼을 한 것인데 그때는 지치기도 하고 워낙 매너 좋고 조건 좋은 남편이 연기보다 우선이 되었을 게다. 그리고 지금 20년 만에 이혼을 하고 다시 돌아와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고 이 방송사, 저 방송사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요즘에도 사람들이 그녀를 깐깐하고 무서운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그녀에게 들어오는 역할도 그런 게 많다고 하는데 ‘사랑과 야망’의 영향이 여 전히 큰 가보다.

하지만 필자가 아는 그녀는 실제로는 정작 화도 잘 안 내고 잘 웃는 사람이고 명랑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데 말이다. 실제 성격과 다른 까칠한 연기로는 단연 최고인 비결이 무엇일까?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 처럼 나이로 치면 중년의 여배우지만 컴백 후 MBC예능 프로그램 ‘놀러와’에 출연해 아이돌그룹 2PM의 팬임을 고백하면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했다.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20년을 평범한 주부로 살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만했다. 결혼 생활 20년 동안 신기하게도 연기생각이 한번도 안났다는데 그러면 남편과 금슬이 좋았을 텐데 이혼은 또 왜 했을까?

남편이 연예인 생활을 싫어했고 그녀는 자유롭게 마음껏 연기를 하고 싶어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녀는 낙천적인 사람이지만 일에 있어서는 ‘가슴을 울리는 연기자로 진심을 담아 연기를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터’라 가정과 연예계 생활을 동시에 한다는 것은 역부족이었던 모양이다. 앞으로도 ‘연기 잘한다’, ‘저 사람은 진짜 배우다’라는 칭찬을 들으며 ‘그냥 배우가 아니라 여배우’로 불리며 80세까지 연기를 하고 싶다’는 차화연. 딸 차재이도 ‘꽃의 비밀’이라는 연극으로 배우 데뷔를 했으니 80세까지가 아니라 대를 이어 배우하는 거네~! 언니, 화이팅!

엘리카 박

●엘리카 박(Elika Park·한국명 희성)씨는

1982년 ‘영 11′이라는 MBC-TV 쇼 프로그램 구성작가로 데뷔. 방송작가 생활을 하며 여러 매체에 ‘자유기고가’로 연예 관련 칼럼과 뒷얘기를 썼다.1990년대 후반 LA에 정착한 후에도 이벤트회사를 운영하며 프리랜서로 집필활동 중이다. 서울예대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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