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집착욕, 소유욕 캐릭터가 많았다. 하지만 이은희는 그런 표현조차도 차분하기도 하고, 냉정하며(calm), 산뜻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분석했다. 모든 사람에게 살짝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호감으로 다가간다.”
조여정은 이은희 캐릭터의 정서를 시청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미친년 아냐”라며 상대를 안해버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해맑은 이은희를 쳐다보고 있으면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그런 캐릭터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눈빛과 표정을 미리 정해놓는 게 아니다. 서늘하게 할 건지, 방긋할 건지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나면 그 다음에는 나도 기억이 안난다. 몰입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어려웠다. 모니터를 해보면 아쉬운 부분도 보였다.”
하지만 조여정은 촬영팀의 호흡이 척척 맞아 밤을 한번도 새지 않았다고 했다. 잠을 충분히 잘 만큼 체력적으로도 좋았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밤을 자주 새면 출연진의 얼굴에 표시가 난다. 특히 여주인공 얼굴에는 안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은희에게는 현대인의 근원적인 욕망과 집착, 누구나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법한 분노조절장애, 어릴때 트라우마, 소유욕 등이 투영돼 있다. 시청자들이 은희를 보시고 대리만족을 했을까요?”
조여정은 대본이 나오면, 정상을 넘어간 행동이 사이코로 보이지 않도록 했다. 적어도 자신만은 믿고 이해하면서 찍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죄의식이 있으면 행동이 움츠러들게 돼, 믿음과 떳떳함이 중요한 요소였다.
조여정은 왜 대학때 좋아했던 록가수 구정희(윤상현)를 유부남 상태에서도 계속 집착했을까?
“대학때 노래 한번 잘해주던 그 모습. 사랑을 못받은 사람은 그걸 확대해석한다. 사랑의 용량은 끝난 거다. 이은희에게는 다른 사람을 채워넣고 사랑할 용기가 없다. 그래서 구정희에게 때 빼고 광내 멋있게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는 거다.”
그런데 조여정의 실제 성격은 집착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덕분에 조여정은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감독과 스태프에게 물어본 후 자신에게 없던 새로운 감정을 개발해냈다. ‘결혼을 안해보고 사회 경험이 없어 초콜릿을 가지고 자랑하는 사회성 제로 여성’을 연기하면서 많은 감정을 느껴봤다는 뜻이다.
“남동생과 함께 엄마에 학대받은 딸이다. 하지만 엄마와 떨어지지는 못하고 옆에서 아줌마(메이드)로 지낸다. 극단적이기는 하다. 하지만 모녀간은 실제 친구처럼 티격태격하는 사람들이 많아 현실성이 반영됐다고 본다.”
조여정은 마지막 불길속에서 죽는 이은희의 결말이 이해된다고 했다. “이은희는 치유될 수 없음은 스스로 알고 있다. 괜찮은 척 하는 거다. 불길속에서 죽는 것은 하고 싶은 걸 다했다는 뜻이다. 구정희와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나. 여기까지면 됐다는 의미다. 그래야 드라마가 심재복(고소영)의 성장기가 된다.”
조여정은 함께 연기한 고소영에 대해 “둘 다 처음 하는 캐릭터였다. 언니(고소영)가 너무 편안하게, 말하듯이 연기하는 걸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조여정은 눈이 동글동글한 이미지여서 불친전한 배역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야 시청자는 배신감이 들고 새롭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그녀다.
조여정은 2016년 4부작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베이비시터’에서 부유한 집안의 화목한 사모님이 불쌍한 피해자임을 우아하게 연기했다. 그 연기력으로 이번 드라마에 캐스팅됐다.
평소 영화와 무용 공연을 많이 보고 책을 많이 읽는다는 조여정은 “그래야 뭔가 하고싶은 게 생긴다”고 새 영역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을 간접적으로 피력했다.
“연예인은 잘 살기 어려운 직업이다. 엄한 시선도 있다. 최대한 조심하자는 생각이다. 하지만 가만있으면 모든 게 스톱되니까, 건강하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오래 만났다. 결과적으로 좁고 깊은 인간관계가 됐지만, 이 분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정체돼 있지않고 오래동안 배우 생활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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