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는 걸) 안 보여주려고 예능에도 안나가고, ‘문제적 남자’에도 안나간다. 나가면 다 알게된다. 이미지 보호 차원이다. 망가지는 이미지는 작품으로 보여주겠다.”
답변하는 방식도 수준급이다. 이런 질문은 잘못 답하면 망언이 될 수도 있지만 능수능란하게 상황을 넘긴다.
이상윤은 돈과 권력을 남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법비’(法匪)들을 법의 심판대에 올린 장르드라마 ‘귓속말’에서 판사 출신 변호사 이동준을 연기했다. 그는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려는 신영주(이보영)와 함께 악을 응징함으로써 가슴막힘을 조금은 뚫어주었다.
“이번 드라마에서 내가 아주 잘했다고 평할 수 없다. 동준이라는 인물을 보여주는 정도였다. 중간에 욕도 많이 먹었다.”
이상윤은 계속 겸손한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번 캐릭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상황과 감정이 계속 바뀌기 때문이다.
“초중반이 특히 힘들었다. 동준이 여러 사람에게 약점이 잡혀 말 없이 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완전히 내팽개쳐지면 안되는 거니까. 그런 게 어려웠다. 하지만 반격의 기회를 얻어 마음을 다잡았을 때는 재미 있었다. 한 회에서도 너무 많은 상황들을 표현해야 했기에 반회천하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동준은 자기 잘못을 까발리면서 대형로펌이 저지르는 비리를 밝혀나간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 ‘내가 해도 불륜이고 남이 해도 불륜’이 된 거다.
“자신이 한 선택에 대해 자신이 벌을 받겠다는 이동준은 어떤 면에서 선인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동준과 신영주라는 인물이 서로 피해를 보면서, 서로 선끼리 다툰다. 어떤 선이 더 선일까를 보게 되고, 선이 악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상윤은 ‘공항가는 길’ 같은 순수정통멜로에 정말 잘 어울린다. 하지만 ‘귓속말’에서도 멜로가 있다. 성격이 다를 뿐이다.
“‘귓속말’은 멜로가 중심이 된 드라마와는 다르다. 감정이 쌓인 걸로 사랑하거나, 아니면 첫눈에 반하거나 하는 건 없었다. 상황이 얼키고 설키면서 정과 연민 같은 감정이 쌓이면서, 우리가 아는 사랑의 감정과는 다른, 남과 여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형성됐다.”
그러면서 이상윤은 멜로(드라마)가 잘 맞는 것도 아니라고했다. “사실 해보고 싶은 것도 많이 있는데, 멜로 하나 보여주고, 이게 좋다고 하니 나안에 있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상윤은 ‘내 딸 서영이’이후 4년만에 만난 이보영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둘은 멜로를 찍어도, 장르물을 찍어도 잘 어울렸다.
“‘귓속말’은 대사량이 많은데다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신들이 많아 잠을 잘못잤다. 최일환(김갑수), 강정일(권율)을 만날 때는 계속 기(氣)의 대결이다. 찍다 보니 허리 벨트가 한칸이나 줄었다. 살이 빠져 신경이 쓰인다. 뿐만 아니라 연기할 때 상황만 바뀌고 구조는 비슷하다면 배우들이 힘들 때가 있다. 보영이 누나와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며 도움을 받았다.”
데뷔 11년차인 이상윤은 ‘공항가는 길’과 이번 작품인 ‘귓속말’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했다. 더 이상을 표현해내지 못했다는 자책이기도 했다.
“자존감이 떨어졌다. 그동안 농구하고 술마시고 수다떨며 시간을 보냈지만 연기자 이상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됐던 것 같다. 이번에는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고, 여행도 다니며, 공연도 보고, 다른 드라마들도 많이 보겠다. 나 자신을 파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상윤은 “영화는 기회가 되면 하고싶지만 드라마는 좀 더 충전한 다음에 하고싶다”고 말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