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은 아쉽지만 김수현의 노력은 보인다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지난 28일 개봉한 액션 느와르 영화 ‘리얼’을 두고 말들이 많다. 장면들은 현란한데 이야기가 실종돼 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뭔가 거창한 걸 만들려다 제대로 꿰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4년만에 영화로 돌아온 김수현은 1인 2역으로 90% 이상 출연했다. 파격적인 변신을 하며 열 일을 했다. “혹평이 있다는 것도 안다. 어떤 반응이 나오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한다. ‘리얼’이 어떤 방향으로 결과가 나온다 해도 나에게는 사랑스런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영화는 카지노 ‘씨에스타’를 오픈하며 성공의 정점에 오른 조직의 보스인 ‘슈트’ 장태영(김수현)에게 이름뿐만 아니라 생김새마저 똑같은 의문의 투자자인 르포 작가 장태영(김수현)이 나타나 두 명의 장태영이 서로 자신이 진짜임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제거하는 대결을 펼치는 내용이다. 오직 진짜만이 모든 것을 갖기 때문이다. 


초반 정신과 의사 최진기(이성민)가 ‘슈트’ 장태영을 상담하며 두 개의 인격이 존재함을 알려줄 때만 해도 흥미진진했다. 장 폴 보드리야르가 설파했던 포스트모던 세계의 진짜와 가짜(복제)의 의미를 이야기 해줄 것도 같았고, 난해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세계 같은 걸 다루는 게 아닌가 싶었다. 스타일로는 ‘매트릭스’ 분위기도 느껴졌다.

“장태영이라는 캐릭터의 매력때문에 선택했다. 이 캐릭터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리얼’은 믿음에 관한 얘기다. 장태영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인격은 믿음의 크기가 강력하지만 모두 가짜다. 후반부에 믿음이 깨지면서 믿음 크기가 변해가는 과정,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심리를 표현하고 있다. 그게 관전포인트일 듯 싶다.”

김수현에겐 몇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강도가 센 액션 연기도 힘들었지만, 서로 상반된 성격의 캐릭터를 그려내는 일이 더 어려웠다. 그는 치밀한 분석과 섬세한 표현, 연기 내공으로 두 장태영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목소리, 제스처, 눈빛 등 인물을 만들어내는 요소 하나하나에 디테일한 변화를 담아냈다.


“준비에 애를 먹은 것은 ‘슈트’ 장태영이었다. 강인한 카리스마를 내고 싶었다. 따라쟁이(르포 작가) 장태영은 생각보다 부드럽게 진행됐다. 둘의 상반된 캐릭터로서의 매력, 색깔이 다양해 욕심을 냈다.”

김수현은 처음부터 전라 모습을 보이고, 최진기가 일하는 병원의 재활치료사로 어딘지 모를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송유화(설리)와 파격 정사신도 펼친다.

“초반 단계부터 노출이 있어 부담스럽고 겁도 났다. 정사신은 중후반에 찍었는데. 촬영중 쉬는 시간에는 운동만 했다. 설리는 에너지가 넘치고 현장이 밝아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캐릭터 분석도 열정적이었다. 심지어 대본연습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김수현은 곳곳에서 환각액션을 보여준다. 송유화의 죽음후 차를 몰고 달리면서 괴성에 가까운 소리를 낸다. 이 장면이 김수현이 가장 기분 좋은 신이라고 했다. 차안에서 칼을 든 조폭들의 습격을 받고 탈출하는 연기도 명장면이다. 투자자인 장태영이 환각속에서 자신이 보고싶은 걸 그려내며 현대무용을 하는 장면도 볼만하다.

데뷔 10년차인 김수현은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걸 이뤘다. ‘드림하이’를 시작으로 ‘해를 품은 달’ ‘도둑들’ ‘은밀하게 위대하게’ ‘별에서 온 그대’ ‘프로듀사’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굵직한 작품들로 시청률과 관객 동원, 한류스타 모두를 다 잡았다.

”어린 나이인 저에게 많은 분들이 찾아주고 골라주고, 사랑해주신데 대해 감사하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하지만, 대단하다고는 생각하지않는다. 그리고 ‘드림하이’ 송삼동을 연기할 때와 지금과 별로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좀 더 용감하게 연기했던, 패기 넘치는 시절이었다. 박치기를 해본 적이 없어 돌멩이에 일부러 세게 부딪혔지만, 이제는 아픈 걸 아니까 부드럽게 할 뿐이다.”

내년에 군대 가는 김수현에게 차기작은 없냐고 물었더니 “‘리얼’로 꽉 차있어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구체적인 차기작이 없지만, 이번에는 남자들에게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다음에는 여성들에게 남자다운 것을 보여주고싶다.”

‘리얼’은 폭력과 마약 노출에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스토리 흐름이 뚝뚝 끊어지는 불친절한 영화다. 마지막 남은 스토리마저 대사로 풀어 설명해버렸다. 이런 영화의 아쉬움속에서 김수현의 노력이 가려지지 않길 바랄 수 밖에 없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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