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 번째는 영화 <브이아이피>가 휘말린 여혐논란이다. 북에서 내려온 싸이코패스 VIP를 두고 벌어지는 추격전이, 한국과 미국 그리고 북한의 복잡 미묘한 관계로 얽히는 독특한 누아르 장르의 영화다. 그런데 영화 속 싸이코패스 VIP가 여성들을 강간 고문 살해하는 장면이 지나치게 과도했다는 비판이 나오면서 여혐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박훈정 감독은 이에 대해 사과하며 자신의 ‘젠더 감수성’이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흥미로운 건 박훈정 감독이 과거 대본을 쓴 2010년 작 <악마를 보았다>에서도 잔인하게 고문 살해당하는 여성 피해자가 등장했었다는 점이다. 결국 7년 전에는 별 논란 없이 지나쳤던 젠더 문제들이 지금은 불거져 나왔다는 것. 이것은 <브이아이피>가 더 과해서 생겨난 논란이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감수성이 달라졌다는 걸 의미한다. 지금의 대중들은 특히 타자에 대해 배려하는 감수성을 요구하고 있다.
타자 감수성에 대한 요구가 느껴지는 두 번째 사례는 영화 <청년경찰>이 중국인 동포를 비하했다며 불거진 논란이다. 사실 중국인 동포가 이렇게 영화 등에서 왜곡된 시각으로 그려져 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0년 개봉한 <황해>가 그랬고, 2015년 개봉했던 <차이나타운>이 그랬다. 하지만 그 때는 그렇게 큰 문제로 비화되지 않던 것이 이번에는 꽤 큼직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중국인 동포들은 그간 쌓여온 자신들에게 대한 왜곡된 시선들을 더 이상은 간과하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세 번째 사례는 드라마 <병원선>에 불거진 간호사 비하 논란이다. 병원선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의료 활동을 벌이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간호사들이 너무 부수적인 존재로 그려지고 짧은 치마를 입고 나오는 등 직업 자체에 대한 비하적 시선이 있다는 데서 빚어진 논란이다. 물론 이런 장면들도 과거 의학드라마에서 숱하게 나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이번에 나온 논란은 의외로 그 파장이 컸다.
최근 대중문화에서 벌어진 이 사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건 타자에 대한 배려 없는 시선에 대해 과거에는 별 문제시되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굉장한 문제로 비화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물론 과거에는 소수자들이었던 타자들이 이제 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미디어의 시대에 들어와서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대중들이 타자에 대한 좀 더 세심한 배려를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최근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념이나 세대 갈등 나아가 인종, 젠더 갈등 같은 것들의 기저에서 결국 맞닥뜨리는 것이 타자에 대한 감수성 부족이다. 어쩌면 그들은 누군가를 혐오하기보다는 타자가 느낄 상처와 아픔을 미처 못 느꼈을 수 있다. 그래서 타자에 대한 감수성은 우리 사회가 가진 많은 갈등들을 해결해줄 수 있는 의외의 해법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