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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크오브호프는 지난 1월 23일 LA 한인타운 소재 헤드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워싱턴주 시애틀에 본사를 둔 자산규모 2억5000만달러의 유니뱅크(행장 이창열)를 인수 합병한다”고 발표했다. 합병을 위한 인수가격은 총 4880만달러. 유니뱅크 주식 1주당 9달러 50센트가 책정된 것이다. 지난 2006년 2020만달러의 자본금으로 출범, 10년여만에 2억 5000만달러의 자산규모로 성장한 유니뱅크의 주주들은 시장 평가치의 2배가 넘는 가격에 은행을 매각하게 되자 “더할 나위없이 적절한 출구(Exit)를 찾았다”라며 만족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뱅크오브호프의 입장에서도 유니뱅크와 합병을 통해 자산과 대출 그리고 예금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 북서부 영업망을 확장하는 한편 워싱턴주 지역의 지점 통폐합으로 비용절감 효과를 보게 된 것에 만족해 했다.
당시 합병 결정을 ‘패닉 세일(Panic sale)’이라며 비판적으로 바라본 시각도 있었다. 한 은행관계자는 “자본금 3600만달러로 매해 300만달러 이상의 이익을 내고 있는 유니 뱅크를 4880만달러에 판 것은 큰 이익을 냈다고 볼 수 없다. 현재 자본금이 계속 증가하고 있고 실적면에서 수치가 좋은 것은 감안하면 더 아쉽다. 만약 좀더 기다렸다면 가격을 더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소규모 은행이 점점 살아남기 어려워지는 시점에서 지역 잠식을 우려한 나머지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자산을 정리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분석도 있었다. 뱅크오브 호프의 공격적인 시장진입에 유니뱅크가 지레 겁을 먹고 싸게 팔아치웠다는 지적이었다.
●뱅크오브호프 연례보고서 제출 지연으로 ‘이상 신호’
합병에 따른 두 은행의 핑크빛 무드는 1분기가 마감될 시점부터 사라졌다. 뱅크오브호프의 연례실적보고서(10-K)제출이 늦어지면서 합병 신청서 제출 시점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뱅크오브호프 측은 “늦어도 올해 안에는 합병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합병을 낙관했지만 한인은행권에서는 합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니뱅크측은 뱅크오브호프의 10-K 제출 지연에 주주총회 날짜도 정하지 못한 채 속을 태웠다. 결국 미루고 미루던 10-K는 제출 시한을 수개월 넘긴 지난 5월에서야 연방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됐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이번 합병 무산의 직접 원인이 된 ‘내부통제결함(internal control deficiencies)’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뱅크오브호프는 10-K 제출과 관련해 당초 “숫자상 달라지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다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 수 있다”라고 여지를 남겼고 합병 과정에서 대출 관련 서류를 정리하는데 문제가 있었다는 것과 BBCN과 윌셔은행 인수합병 이후 내부 통제시스템에 대한 감사가 사베인-옥슬리법(지난 2002년 엔론, 월드컴 등의 기업이 분식회계로 적발되면서 상장기업의 회계감사를 강화한 규정)의 규정을 충족하는데 부족했음을 인정했다. 또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김규성 수석전무를 포함한 다수의 주요 임원진이 보직을 바꾸는 등 물갈이 대상이 됐고 외부 회계감사법인을 교체했으며 주주총회도 일자를 미루다가 겨우 지난 7월에야 개최하는 어수선한 모습을 보였다. 케빈 김 행장은 주주총회 현장에서 유니뱅크와의 합병에 대한 질문에 “9월 안에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라고 애매하게 답했지만 사실상 그때까지도 합병 신청서를 감독국에 제출하지도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뱅크 주주들 사이에서는 이때 이미 매각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 합병 무산에 따른 영향
뱅크오브호프의 입장에서는 합병 무산이 상당히 부담스럽다. 최근 여러 분기 동안 실적이 기대치를 밑돌고 있는데다 연이은 핵심인력의 이동으로 내부 분위기가 어수선한 참이어서 ‘뭔가 잘 안된다’라는 부정적인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만일 3분기의 실적마저 개선의 여지를 보이지 못한다면 이른바 본격적으로 은행 안팎에서 책임을 묻고 따지며 심지어 손가락질(핑거포인팅)하는 최악의 ‘폭탄돌리기(책임전가)’ 상황이 나올 수 있어 우려스럽다. 합병 실패의 원인이 뱅크오브호프 측의 내부통제결함에 있었던 것으로 ‘공식화’됨에 따라 앞으로 추가적인 인수합병 전략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한인은행권의 동향에 밝은 한 투자기관의 분석가는 “뱅크오브호프는 일단 3분기 실적에서 뭔가 긍정적인 변화를 보여줘야 하며 고석화 이사장의 퇴진과 고다드 CFO의 은퇴, 일부 주요 경영간부의 이직에 따른 업무 분담 혼선 문제를 빠르게 메꿔야할 것”이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케빈 김 행장의 경영능력과 리더십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니뱅크측에서는 합병 무산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분위기다. 은행 합병과 무관하게 지속적으로 수익을 내는 상황인데다 합병 발표 직후 행장직을 떠난 이창열씨를 대신해 행장대행직을 맡고 있는 피터 박 전무가 역량을 인정받고 있어 큰 타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시애틀 지역을 중심으로 한인은행에 대한 투자를 희망하는 자본가들이 상당히 많아 증자를 포함한 성장 여력 확보에도 문제가 없고, 추후 합병을 다시 추진할 경우 기존 인수가격 9.50달러(주당) 보다 더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합병무산의 여파가 적어보이는 이유가 된다.
합병 실패에 대한 주주들의 생각은 서로 엇갈린다. 양 은행은 합병발표 당시 매입방식을 현금지급 형태가 아닌 주식교환거래 방식으로 정했다. 현 시점에서 주식교환거래 방식은 두가지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우선 단순하게 해석해보면 주주들이 합병 무산으로 손해를 봤다고 말할 수 있다.
유니뱅크가 지난 2006년 출범할 당시 주주들은 10달러로 주식을 샀고 이후 2010년 액면분할로 주식수가 2배가 되며 액면가격 5달러가 됐다. 현재 장외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유니뱅크의 주가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합병을 “시장 평가치의 2배가 넘는 가격(9.50달러)에 은행을 매각하며 최고의 출구전략이 됐다”라고 평가한 것은 이런 계산을 바탕에 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조금만 달리보면 큰 손해로 보기도 어렵다. 합병이 현금 지급이 아닌 주식교환거래임을 반영해 계산해보면 뱅크오브호프의 주가대로 합병이 이뤄졌을 경우 뱅크오브호프의 지출(지급 주식량)은 늘고 유니뱅크 주주들의 수익은 낮아져 둘 다 손해를 보는 ‘루즈-루즈’(윈-윈의 반대)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는 합병 당시 21.45달러에 달하던 뱅크오브호프의 주식 가격이 최근 15~16달러 선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만일 합병 직후 주식을 매각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보유로 가닥을 잡은 주주가 있다면 이번 합병은 당초 예상했던만큼 수익을 얻을 수가 없었다.
유니뱅크의 한 주주가 “이미 몇달전부터 뱅크오브호프의 내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합병이 무산될 것으로 예상했다”라며 “합병 무산은 큰 문제가 없다. 다수의 주주들도 이를 이해하는 분위기다”고 전했던 것은 바로 이런 분석에서 나온 것이다.
합병 무산 공지와 함께 현금 25센트(주당)와 100주당 5주의 특별 배당을 전격 발표, 주주들에 대한 내부 단속 및 결속을 강화한 것은 합병 실패를 손실로 보는 주주들을 의식한 ‘마음달래기’라는 풀이다.
특히 유니뱅크 직원들은 합병이 무산된 것을 가장 반기고 있다. 유니뱅크 직원들은 합병 발표 이후 지점 통폐합에 따른 실직 혹은 합병 이후 큰집이 될 뱅크오브호프의 ‘텃세’를 우려해왔다. 합병이 무산되면서 고용과 거취에 대한 걱정이 사라졌다. 합병 무산 이후 나오기 시작한 차기 행장 문제는 피터 박 행장 대행이 가장 유력하다. 합병 결정 이후 행장 대행으로서 업무 능력을 높게 평가받고 있어 가장 이상적인 선택지다.
전임 이창열 행장의 ‘컴백’설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는 사실상 어려운 일이다. 일단 이 전행장이 선교활동에 치중할 것임을 밝혔고 후임 박 전무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고 여러차례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전 행장은 몇달전 남가주 샌디에고로 거처를 완전히 옮겨 은퇴를 기정사실화했다. 최한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