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꽃이 노란 병아리떼처럼 요란스럽게 피었다가 초등학교 졸업식 같이 눈물로 뿔뿔이 흩어졌다. 개중에는 실에 꿰여 목걸이로 사랑받기도 하겠지만 낙태되어 핏덩이로 버려져 애처럽고 가슴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파랗게 주먹만 하게 달렸다 싶었는데 뚝뚝 떨어져 버리는 땡감들. 마치 내가 보고 겪어온 4·19, 5·16 등 시대흐름에 세월호 참사에서 새파랗게 저버린 젊음이 안타깝고 가슴 시리다. 이젠 다 커서 익어가는가 싶었는데 허탈하게 떨어져 있는 그 감들은 병상에서 돌발사고로 죽은 이의 못다한 말들처럼, 무수한 시간들이 발에 채이는 한닢의 동전처럼 사랑도 그렇게 와서 지워져야 하는 것인지 쪽빛그리움으로 남기고 간다 .
붉게 물들어 홍시가 돼 가지에서 따내려고 감을 비틀면 홍시가 기어코 매달려 떨어져 죽지 않으려는 듯 노인네가 온갖 약봉지를 쌓아놓고 TV나 신문지상에 장수건강에 좋다는 영양제, 메디케어, SSI, 웰페어를 쪼개가면서 사들여 오래 오래 백세 인생으로 견뎌 버티어내는 홍시. 결국 팍 터져서라도 버티어내는 우리의 인간사를 연상시키는 감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다.
가을이 와서 곱게 물들어 책갈피에 접어두는 단풍이 되어야 하는데 쓰래질 당하여 버려져 땅에 묻히는 낙엽을 보면서 잊었던 삶의 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태어난 생명이라면 누구나 시한부 생명인 것을 잊고 살고 있듯 그러한 점을 다시 일깨우는 가을. 철학적인 계절이다.귀뚜라미 소리도 여름보다 가을에 들으니 더욱 애처롭다. 마치 원초적인 고독으로 흐느끼는 소리같다. 그 소리들, 고독이다! 점점 짧아지는, 그래서 더 아쉬운 계절의 시간. 잔고를 잃어 버리고 싶지 않은 안타까움.
잠 못 이룬 나의 빈 뜨락에 귀뚜라미
뭐 그리 서러워 내 못다운 울음 우느냐
울며 살아온 이의 몇곱절 그런 서러움이냐
마음 마저 텅텅 빈 외로움일 때
가슴팍 그대 위안이 되리
닳을 대로 닳은 날은 다 떼 버리고
노란 속 낱알만 간추려 깔아놓고
서천에 영 떠나는가
우리 빈 자리 그대 소리만 가득하거늘
하늘 받치고 선 저 산자락
맑디 맑은 바람만 간추려 내고
구름처럼 아주 영 떠나는가
살아온 전생이 그렇게도 부질없이 살웁든가
너의 구멍 뚫린 산조만이 가득 하거늘
-자작시 <귀뚜라미>
짧은 만큼 더욱 소중한 가을을 어찌 외면하랴 !
지워져도 아름다운 것은 사랑 뿐인 것을 변해가는 슬픔을 무엇으로 채울까. 높아지고 투명한 가을 하늘에서 연민을 느낀다. 따뜻한 커피 한잔처럼 점점 줄어드는 한모금으로 기억 저편에 숨은 연민을 묻어보리라.이 가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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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태/시인·핸디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