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시인 김용호 (1912-1973)님의 말이 ‘시는 재치로 쓰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 써야 한다’고 했다. 중학생쯤 됐었을까. ‘저구름 흘러가는 곳 ‘이라는 가곡을 영화 테마로 배우 최무룡씨가 불렀던 노래가 인상 깊게 남았다. 늘 가족과 떨어져 유학 생활에 구름을 쳐다보던 애향심에 가득찼던 때라 김용호 시인 시가 유독 더 다가왔을 것이다.
LA 한인 문인 단체 중 한곳의 10월 정기모임 작가 강의 제목을 보니 ‘밥 하기 보다 쉬운 글쓰기’였다. 일터로 나서는 내내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글쓰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었나?”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학생 시절 학원사에서 발간하는 학생잡지 ‘학원’에 여러차례 시를 응모했지만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시다가 고교에 진학한 후 ’10월이 오면’이라는 시로 겨우 입상했다. 생활고에 문학도의 꿈을 접고 공대로 진학하고 이후 국방공무원으로 일하면서도 국군 전우지에도 취미로 응모해 잡지 한귀퉁이를 차지하곤 했다.
시 한편을 쓰기위해 며칠이나 골머리를 앓았고 그렇게 수십여편의 습작을 쓰레기통에 쓸어담고 나서야 겨우 ‘시 같은’ 문장 하나를 써내릴 수 있었다. ‘밥 하기 보다 쉬운 글쓰기’란 주제를 정한 강사님에게는 죄송하나 시, 수필, 소설은 물론 그 짧은 꽁트라도 글쓰기가 밥 짓기보다 쉽다는 말은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다.
고교 시절 시인 원형돈 선생님과 황순원 작가의 동생인 황순만 선생님으로부터 글쓰기를 배웠다. 이후 수많은 습작을 써내려가며 깨달은 것은 ‘나무는 갈색이다’같은 피상적 말과 ‘내 마음의 호수에 돌을 던진다’와 같은 상투적 표현은 피하는 것이 좋고 하고자 하는 말은 관념과 난해함을 빼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은 쉽지 이렇게 이런 저런 표현을 덜어내면서도 멋진 은유와 비유를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글쓰기가 쉽다니…
너는 온 세상의 피
가까이 갈수록 저미는 아픔이든가
멀 수록 멀어지는 손 끝의 안타까움이든가
어느 한쪽의 사랑될 수 없는 그대
나의 의식은 묻는다
이 지상 사이에서 어둡고 진한 깊은 밤
불현듯 잠깐씩 생생한 것이 있었든가를
너의 피 한 몸이 되고
같이 가고 싶고
목숨도 벗어 버리고 싶은
우리라는 말을 창조 하듯이
갈 길이 기쁨이 되고 서로 찢어진 살점
꿰매주는 끈끈한 공동체
가녀린 떨림과 핏발 서린 앙칼짐
우리들 희망 조촐한 뼈대라는 것을
너를 향한 집념이 의지의 팽이 날로
심층 갈피 속에 묻혀 있을
빛깔 영롱한
금빛 언어를 몇마디 찾아올 기적을 위해
너의 곁을 홀연히 떠나지 못하고 있다.
-자작시 <우리라는 시인의 시>
시를 쓰든 수필을 쓰든 간에 글을 쓰는 것은 나만의 고독이며 열정이다.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하는데 힘이 되어주고 포기하고 싶을 때 용기를 복돋아주는 원동력이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새로이 창조하는 양식이며 삶이라 생각한다.지금까지 내 인생이 평탄하지 못한 삶이었고 흔들리고 넘어져도 스스로 홀로 서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살아서 웃을 수 있는 것에 행복하려 한다.
품위없고 점잖치 못한 거 함부로 드러내놓는 가하면 가렵고 신 것을 참지못하는 것이 나의 단점이지만 내 인생의 양념이라 여긴다. 아직도 상념의 날개를 접지 못하고 늘 이 모양으로 상주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