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SNS마켓의 불공정한 속살

‘블로그 핫딜가로 준비했으니 다들 득템(얻을 득(得)ㆍ아이템(item) 합성어) 하세요.’

얇아진 지갑에도 소비욕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으니, 그 가냘픈 틈새를 ‘SNS마켓’이 파고든다. 학업과 직장생활의 스트레스가 끓는 물처럼 보글거리면 혈압이 냄비 뚜껑마냥 달그락거린다. 한껏 달아오른 머리를 식히기 위해 블로그 마켓에 접속해 ‘가성비’ 좋은 옷을 솎아낸다. 모델의 핏, 옷의 재질, 가격을 골고루 체크하며 머릿속으로 주판알을 두드린다.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는 말을 몇번이고 곱씹는다.

‘공동구매가 곧 마감되니 서둘러야 한다’는 판매자의 말에 조급해진다. ‘현금결제시 5000원 할인’이라는 당부에 계좌이체를 준비한다. ‘이웃추가 해주시고 모든 문의와 주문은 비밀 댓글로 부탁드려요’라는 말이 석연치 않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블로그마켓 특성상 교환과 환불을 불가’하다는 공지에도 “나는 절대 환불할 일이 없으리라”고 다짐한다.

며칠 뒤 찌그러진, 급히 뜯은 택배상자 안에는 건초더미 같은 옷이 푸석하게 늘어져있다. 옷에 눈알이 있었다면 두 손가락으로 찔러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성을 되찾고 자책을 해보지만 SNS마켓에는 교환도 환불도 없다. 사진 속의 보들보들한 촉감과 착 감기는 ‘핏’을 자랑하던 옷도 없다. ‘득템’한 것은 옷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가늘어진 지갑이다. 


최근 블로그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련 피해 사례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판매자가 환불과 교환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현금 결제를 유도해 탈세를 일삼지만 정부는 뾰족한 수 없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특별시 전자상거래센터에 따르면, 블로그마켓 피해 신고는 지난 2014년 106건에서 2015년 506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에는 892건을 기록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계약을 취소하거나 반품ㆍ환불을 거절하는 유형의 피해(64%)가 가장 많고, 판매자가 연락이 끊기거나 계정이 폐쇄된 경우(11%)도 적지 않다.

그동안 개인 온라인 계정을 이용해 상품을 판매하는 ‘SNS마켓’은 탈세와 갑질의 온상이라는 비판을 받았왔다. 하지만 별도의 절차 없이 판매가 가능하고, 초기투자 비용이 크지 않아 우후죽순 늘어나는 추세다. 관련 법 규정도 없어 피해구제도 힘들다.

수많은 ‘팔로워’들과 이웃을 양떼처럼 몰고 다니는 SNS마켓 판매자는 모든 결정권을 손에 쥔다. 상당수 판매자는 인터넷 상품 판매를 위한 통신판매업 신고를 하지 않는다. 판매업자 신고를 하지 않으면 ‘개인간 거래’로 분류돼 일반적인 상법의 적용만 받는다. 소비자들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제시해 청약철회를 거부할 수 있어 피해 사례는 끊임없이 보고되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판매자들의 ‘탈세 꼼수’가 날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블로그 마켓은 가격과 상품 문의, 주문을 모두 ‘비밀 댓글’로만 받는다. 매출을 감추기 위해 소비자가 제품가격과 문의 사항, 구매 여부를 비공개 댓글로 달도록 한다. 거래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으니 수억 원대 매출에도 ‘간이과세자’(연 매출 4800만원 이하 사업자)로 등록해 세금 혜택을 받는 판매자도 많다.

불법 판매자는 그야말로 돈을 쓸어담지만 단속은 쉽지 않다. 한국소비자원은 소비자거래법에 의거해 활동하기 때문에 개인 신분의 제조ㆍ판매자와 거래한 경우 제재할 권한이 없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은 개인 간 거래는 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그러니 탈세 추적은 쉽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도 블로그 SNSㆍ마켓 실태를 모두 파악할 수 없어 신고나 제보가 들어온 건만 관리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블로그ㆍ인스타그램ㆍ카톡 등 다양한 통로를 통해 거래가 이뤄져 모든 판매자를 모니터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대신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마켓 리스트가 포털사이트 검색에 노출되지 않도록 사전예방 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방은 일부 사이트를 제재하는 수준에 그치고, 사후 대책은 사실상 전무하다. 지금 이 순간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SNS마켓은 수십 개, 수백 개씩 생겨나고 있다. 정부가 SNS마켓의 빗장을 걸어 잠그지 않는 한, 발을 동동 구르는 피해자는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다. 

do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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