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중에서도 손여은(34)은 예쁘장하고 여리여리한 몸매라 악녀가 잘 어울리지 않을 듯했지만, 의외로 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악한 역할을 해도 별로 미움을 받지 않았다. 인터뷰 첫 질문은 원래 그렇게 소리를 잘 지르는가 하는 거였다.
“평상시 톤이 아니다. 작가님이 화도 내고 소리도 질러보면서 악역을 해보면 스트레스가 풀릴 수 있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쌓였다. 책상을 팔로 쓸고, 남을 해하는 신이 많았는데, 감정이 계속 남아있기도 했다. 에너지의 최대치를 쓰느라 힘들었다.”
공룡그룹 후계자로서 모든 걸 다가진, 남부러울 게 없는 화려한 구세경이 왜 이렇게 악행을 거듭했을까?
“악인을 연기할 때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야 하는 생각으로 연기한다. 내가 공룡그룹을 차지해야 되는데, 아버지는 내가 잘못됐다고 하고, 남편은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 그런 고독과 결핍이 있는 상태에서 내 것을 누가 뺏어가면 ‘너 따위가 감히~’ 하고 큰소리가 나온다.”
김순옥 작가 드라마에는 역대급 악녀가 나온다. ‘아내의 유혹’에서는 성공을 위해 친구 남편을 빼앗는 신애리(김서형)와 ‘왔다! 장보리’에서는 성공을 위해 자식도 버리는 연민정(이유리)이 착한 역할을 맡은 주인공보다 더 큰 존재감을 발휘했다. 김순옥 작가표 악녀를 소화한 느낌은 어떠할까?
“그 전에 했던 분들이 워낙 이슈가 되고 쟁쟁한 배우들이라 부담이 됐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 해석해서 연기했다. 누구와 비교해 캐릭터를 잡지 않았다. 구세경은 전형적인 악녀지만 작가님이 결말을 제대로 맺어주고 신경을 많이 써줘 감사하다. 다행히 입체적으로 표현돼 시청자분들도 공감해주신 것 같아 나름 뿌듯하다.”
손여은은 극중 친구인 김은향(오윤아)에게 당해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유방암에 걸려 시한부 판정을 받는 등 오윤아와는 악연이었지만 이들이 보여준 ‘워맨스’는 시청자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마지막회에서 손여은은 오윤아의 무릎에서 죽는다.
“오윤아 씨와는 완전히 원수지간인데 시청자들이 응원해 주신것은 뜻밖이었다. 아마 인간적으로 공감되는 게 있어서라고 생각한다. 아들 용화의 신발과 가방을 사놓고 은향이에게 맡기고 가는데, 너무 짠했다. 구세경은 죽을 때도 죽는 것 같지 않게 하고 가더라.“
손여은은 시한부 인생을 사는 역할을 하면서 몇해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떠올라 좀 더 와닿는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시한부 인생을 사는 분과 그 가족들이 모두 힘을 내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부산 동아대학교 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손여은은 작은 역할부터 시작해 차곡차곡 연기력을 쌓아왔다. ‘세번 결혼하는 여자’에서는 극후반에 투입되고도 큰 관심을 받았다. ‘부탁해요 엄마‘ ‘마스터-국수의 신’ ‘피고인’ ‘언니는 살아있다’ 등 작품마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캐릭터를 연기해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성을 키웠다.
“조그만 역도 많이 맡았다. 연기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작품 하나하나 의미가 있다. 조금씩 느는 것 같다. 작품을 하면서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연습해보면서 체득되는 게 있다. 좋아하는 배우들의 연기도 보고, 한마디로 좋다. 연기 안됐던 시절이 있어 지금도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손여은은 이번 드라마를 위해 3개월간 현대무용도 배웠다.배우를 하면서도 피아노를 꾸준히 치고있다.
예능에 별로 나오지 않는 손여은이 예능에 나오자 4차원이라고 했다. 자신은 뭐가 4차원인지 모른다고 했다. 일부러 컨셉트를 잡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내안의 똘끼’라기보다는 청순한 외모인데 청순한 이미지를 발산 하는 게 아니고, 좀 더 친근하게 행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저는 작품을 선정할 때 모든 걸 다 열어놓고 한다. 작품을 보고 내가 그안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그것이 선한 메시지면 좋고, 구세경도 악녀지만 그렇게 노력하면서 캐릭터를 잡아나가려고 했다.”
솔직하게 자신과 인생, 그리고 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손여은이 왜 연기가 계속 성장하는 지 알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