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피스 천문대를 아침마다 조깅하러 가면서 수 없이 지나쳤던 동네 극장이지만 호기심에 더위도 피할 겸 처음으로 입장해봤다. 1931년에 세워진 미국의 전형적인 올드스타일의 상영관으로 스크린이 3개가 있는데 예상보다 음향 성능이 참 좋았다. 영화 제목은 ‘Victoria & ABDUL’-. 옛날 영화인 줄 알았는데 올해 개봉한 최신 작이다. 퀸 빅토리아의 라스트 러브 스토리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1819년에 태어나 1901년에 사망했다. 1840년 2월 방년 21세에 엘버트 공작과 결혼해 20년 동안 살면서 4남 5녀의 자녀를 낳았는데 모두 유럽 왕족과 결혼해 ‘유럽의 할머니’라는 칭호를 갖기도 했다.
일찍 남편도 죽고 시종인 존 브라운까지 죽은 후 규칙적인 일상의 반복과 단조로운 일과 뿐인 여왕의 생활에 젊은 인도인 압둘카림이 새 시종으로 등장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다. 낮에는 양복차림이지만 밤에는 이슬람 복장을 하는 압둘은 인도의 생활풍습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곧은 나무가 먼저 꺾이고 굽은 나무가 산을 지킨다’ ‘정직한 자가 고통받는다.즉, 모난 돌은 징을 맞는다’라는 등의 인도 금언을 여왕에게 들려준다. 젊은 인도 시종의 활기넘치는 태도에 흥미를 느끼며 점차로 여왕 자신도 고지식한 격식의 생활에서 벗어나 쾌락과 부의 축적, 의무를 다하는 인도의 국민성을 이해하게 된다.
런던 케신톤 궁전을 둘이 함께 산책하며 바람부는 언덕에 올라 차를 마시는 돌발적인 행동. 주위를 물리고 단둘이 와이트섬 오스본 하우스에서 산책을 하는 등 즐거움이 가득한 활동으로 이어간다. 여왕은 하노버 가문의 선천적 유전인 혈우병에도 불구하고 61년이라는 통치를 마감하는 임종 순간에 모두를 물리치고 압둘라 시종만을 두고 이별의 눈물을 흘린다.그 장면은 너무나 감동적이다.
일직 남편을 여의고 의지하던 존 브라운마저 죽은 후 왕실생활이 권태로울 때 젊은 인도 시종을 만나게 된 여왕의 외로움은 그 뿌리가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없으면 외로움도 없다. 지위고하 간에 인간은 누구나 할 것없이 숙명적으로 외로운 존재이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늘 마음엔 바람이 있다. 자신의바람이 받아주지 않으면 불만이 생기는데 이 불만이 쌓이면 외로움도 함께 쌓여 깊어진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발정기가 따로 없다. 사시사철 생식과 무관하게 성행위를 즐기기 때문에 생명이 유지돼 있는 한 성욕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나는 환갑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성생활을 안할 거라 생각했다. 내 자신이 할아버지가 되고보니 내 자신도 싫지 않고 쿠울리지 근성이 왕성하다. 내 주변의 77세 할아버지와 73세 할머니도 1-2주에 한번씩 잠자리를 같이한다고 한다. 당뇨병 심장병 고혈압같은 혈관 질환 지병이 없으면 80,90세에도 성생활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 몸
하루 하루 불사르고 내일도 불살라
혼신을 다해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
이제
사랑한다는 것이 결코
감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은 압니다 .
그러나
또 한번 가슴을 죄이는 전율로
간음이 익은 감 되어
하늘로 향해 떨어졌음 합니다
설사
빛을 찾아 스스로 태우는
불나방이 될지언정
누가
제 사랑에 돌을 던지려 하시렵니까
제 일생 간음이 성긴 빗방울 되어
바다로 향해 떨어 졌음 합니다.
-자작시 <잃어버린 사랑>
노년기의 사랑은 단순한 분출보다 교감하는 것이라 본다. 젊은 사람들은 애정 없는 부부간에 의무방어 같은 성생활이 가능하지만 노년기의 사랑은 배려심 의견존중으로 사랑을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촉매제 기능을 한다. 각방을 쓰는 부부보다 한이불 한침대에서 지내는 부부는 불화가 적다. 남은 세월을 함께 짝과 교감하며 나누는 스킨십도 훌륭한 성생활이다. 사랑과 성은 죽는 날까지 불가분의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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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태/시인·핸디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