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태의 일상 속에서] 모국의 가을에서

나를 사랑하는 법을 몰라 외로운 걸까. 우리가 사는 이 거리 가로등이 켜지면 누군가 문득 보고싶다. 그리고 생각이 많아지는 밤. 달과 별들이 내곁으로 다가왔다. 가을이 짙어가면 우리의 마음은 쉽게 감기를 앓는다.가슴이 텅빈 듯 허무함이 밀려들거나 지독한 고독에 휩싸인다.

누가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해달라고 했던가? 나는 20년만에 모국을 방문하는 길이었다. 한 여인이 LA에 조카 출산바라지 왔다가 돌아가는 자정 비행 날짜를 잘못 알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 여인과 함께 늦게까지 공항카운터에서 매달린 끝에 함께 동승, 서울에 도착하여 데이트할 기회까지 갖게 되었다. 찬바람이 불고 달랑 달력이 한장 남은 아쉬움이 같은 ‘돌싱’끼리 의기투합, 그녀의 승용차로 동해안을 쭉 훑어 설악산까지 다녀왔다. 꽉 막혔던 가슴이 탁 트이면서 난 지금 혼자가 아니라는 뿌듯함을 가졌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다 자기 몫의 무게를 하나쯤 짊어지고 산다. 우울 불안 초조 등 요동치는 마음을 한껏 다스리기 위해 다시 의기투합해서 지하철을 타고 김포에서 강화를 가는 버스를 타고 강화읍 석모도 석포리 선착장에서 보문사 가는 배를 탔다. 새우깡에 따라오는 갈매기떼에 먹이를 던지며 손끝에 닫는 느낌에 한껏 신이 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그녀는 열성적인 불교신자였다. 나는 종교적인 색채를 없애고 뜻밖에 교통사고처럼 닥쳐온 감정에 제동을 걸지 않고 한껏 수렁에라도 빠지고 싶었다. 이때껏 무기력하게 되풀이되어 왔던 지난날을 무려 20년만에 보상받는 ‘대박’ 기분이었다.

강화도 보문사는 서해안을 한눈에 내려다보는 낙조로 유명한 관광지라 한다.

갈매기 날개 끝에 펼쳐진 저녁 노을

불같이 타 오름이

어찌 그리 황홀한가

멈출 수 없는

전율로 내게 다가온다

바람은 오래된 건반을 밟으며 지나가는

목쉰 소리를 내고 어둠을 짊어지고 가고있다

노을 속 빈 몸으로 서 있는 노년의 긴 그림자

지는 노을과 사라지는 두려움

무수한 눈물끼리 어울려 강물로 뭉쳐 바다에 모여

새떼들로 날아올라 물보라로 피었구나

저녁바다 불타고 그 속에

나 또한 마다할 수 없이 타오르리라

-자작시 <해변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

둘이서 하나 되어 명상하는 사랑의 감정. 명상 후에 뇌는 커지고 두꺼워져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이 아마도 반토막으로 줄어들었나 싶다. 모든 것을 버림으로써 얻은 자유. 퇴색되어 삭아서 슬플 것 없는 이 마지막 가는 늦가을의 고요한 안식이 잊지못할 기억으로 고요한 허무에 머리를 감는다.

이상태(핸디맨)

이상태/시인·핸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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