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조, 기쁨과 슬픔을 세밀하게 풀어내다

-아이유, 민서는 어떻게 해서 정미조 팬일까?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개여울’을 애절하게 부르던 가수 정미조(68)가 지난해 37년 만에 가요계로 복귀한데 이어 이번엔 데뷔 45주년을 맞아 12번째 정규 앨범 ‘젊은 날의 영혼’을 발표했다.

정미조는 1970년대 TV를 꽉 채운 서구적인 느낌의 가수였다. 패티김 처럼 스탠더드 팝의 분위기에 포크적인 요소까지 가미해 큰 사랑을 받았다. ‘개여울’ 외에도 ‘그리운 생각’, ‘휘파람을 부세요’와 송창식이 작곡한 ‘불꽃’을 히트시켰고, 샹송을 멋드러지게 불렀다.

“저를 샹송가수로 많이 소개하던데, 요즘 샹송이 아니라 에디트 피아프와 이브 몽땅 등 옛날 샹송을 좋아해요. 요즘은 프랑스에도 과거 식민지였던 아프리카풍 음악이 들어와 현대풍 샹송이 히트하고 있어요.”


정미조는 이화여대 재학시절 통기타를 치고 포크송을 불렀다. 그리고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의 노래와 모리스 앨버트의 ‘필링스’, 소녀적인 감성의 ‘불꽃’을 풍부한 성량으로 소화했다. 하지만 그는 1979년 갑자기 은퇴를 선언하고 프랑스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파리에서 샹송을 들으면서 그림 공부를 했어요. 13년 유학생활동안 음악은 잊고 살았어요. 목소리를 창고속에 두고 안쓰고 있었는데, 유학생들끼리 술먹으면 노래하라고 해 괴로웠어요. 과연 소리가 나올까 하면서 노래한 적도 있었죠.”

정미조는 귀국해 수원대 조형예술학부 서양학과에서 20여년간 교수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을 한뒤 지난해 37년만에 정규 앨범 ’37년’을 내놨다. 이 앨범 타이틀곡인 ‘귀로’에서는 따뜻한 원숙미를 보여주었다. 20대에서 60대로 변했건만 목소리는 변하지 않고, 더욱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새 앨범 ‘젊은 날의 영혼’에는 14곡이 수록돼 있다. 미니음반이나 싱글 위주의 활동이 대세인 지금 한번에 14곡을 채워넣는 중량화의 뚝심이 부러울 정도다. 여기에는 라틴, 팝 재즈, 모던 포크 등 다양한 음악적 시도가 들어있다. 그렇다고 장르적 색채를 분명하게 하지는 않았다. 장르적이되, 장르적 색채는 오히려 약화시키고 대중성이 강화됐다.

“요즘 듣는 음악은 장르 불문이에요. 트로트만 빼고는 다 듣는 것 같아요. 신보는 지금까지 노래 한 것과는 달라요. 재즈, 샹송, 라틴풍으로 가는 게 행복해요. 정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14곡 모두 나에게 다가와요. 젊었을 때에는 단지 노래가 좋아 불렀는데, 그때와는 다른 감성이에요.”


정미조의 목소리는 더욱 깊고 유려해졌다. 삶의 격정에서 한 발 비켜난 사람의 오래된 기쁨과 슬픔을 세밀하게 풀어내, 품위 있는 어른의 노래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앨범 제목과 동명인 ‘젊은 날의 영혼’은 상처투성이의 젊은 날의 자신을 만나러 가는 정신의 여정을 노래했다. 노(老)가수의 고백적 노래가 뜨겁게 말을 걸어온다. 정미조는 “눈물이 나 노래를 못할 정도였어요. 아마 파리 유학의 어렸웠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을 거에요. 파리에서 3년 정도는 바삐 보냈는데, 7년 정도 되니 어떻게 살아야 될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더블 타이틀곡의 하나인 ‘한 걸음만’은 박주원의 화려한 기타가 이끄는 라틴 리듬 위로 정미조의 인생이야기가 펼쳐진다. 또 다른 타이틀곡 ‘동백’은 이번 앨범 프로듀서 정수욱의 곡이다. 꽃잎이 아니라 송이째 지는 동백의 비감한 낙화와 상실을 담았다. 정미조는 “동백의 가사를 완벽하게 외웠다”고 했다.

‘바람의 이야기’는 엠넷 오디션 프로그램 ‘위키드’ 출신 12살 스타 오연준이 참가해 화제다. 멀고 아득한 곳에 대한 동경을 아이와 노가수가 다정하게 대화하듯 풀어냈다.

이번 앨범에는 정미조가 처음으로 송라이팅에 도전했다. ‘난 가야지’ 등 3곡에 작사, 작곡자로 이름을 올렸다. 정미조는 ”제가 작곡, 작사를 다하다니? 프로듀서 정수욱 씨 덕분이에요“라고 말했다.


정미조는 “음악과 미술은 똑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멜로디, 소리로 예술감각을 표현한다면 미술은 화폭에다 붓과 물감으로 표현하는 거죠. 미술은 발표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면, 음악은 인터넷을 통해 바로바로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 다르겠죠”라고 말했다.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걸 느껴요. 투 트랙으로 한꺼번에 녹음해 2번째 노래를 하던 원시에서 완전히 우주선을 탄 것 같은 기분이요. 노래하기 너무 편하고 좋아요. 외국 팝송을 번안해서 불러야 하던 시절 가사가 틀릴까봐 걱정하던 시절과는 다른 것 같아요. 노래의 반응이 너무 빨리 나와 신기하기도 해요.”

‘개여울’은 10~20대도 좋아하는 노래다. 아이유(24)는 정미조의 팬이라며 ‘개여울’을 리메이크했고, 윤종신이 제작한 신인가수 민서(21)는 가장 좋아하는 가수로 정미조를 꼽았다. 이게 노래가 가진 힘이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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