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LA 미주헤럴드 황유나 기자/yuna@koreaheraldbiz.com] |
지난 2016년 여름. 자니 윤씨는 제2의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와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 터스틴시의 한 양로병원에서 몸을 맡겼다. LA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던 윤씨는 2006년 LA를 방문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미국 후원회장을 맡았다. 그 인연으로 박근혜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2014년 한국관광공사 감사를 맡아 한동안 서울에서 지냈다.그러다 뇌출혈이 찾아왔고 겨우 몸을 추슬렀으나 고국 생활은 그걸로 끝났다.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미국으로 돌아왔지만 그의 주변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60대 늦은 나이에 결혼했던 부인도 떠났고, 친구들도 찾지 않았다. 보행기에 의지해 힘들게 버텨내던 그에게 어느날 알츠하이머, 치매가 찾아들었다.
19일 헌팅턴 양로병원에서 만난 윤씨는 더 이상 예전의 ‘자니 윤’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은 어렴풋이 알고 있는 듯했지만 그 이름을 만들어준 스토리에 대한 기억은 잃어버린 듯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느냐”라는 질문을 했더니 힘들게 생각해보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찡그리지만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자 금세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윤씨와 같은 방에 기거하는 한인 노인 모씨는 “기억을 잘 못한다. 본인이 원하는 말을 못하고 다른 사람의 말도 잘 이해 못 하다 보니 하루 종일 멍하게 앉아 있다”라고 귀띔한다.
윤씨의 기억은 연결고리가 없는 듯했다. 띄엄 띄엄 하나씩, 그것도 가끔 연결될 뿐이라고 한다. 그와 억지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질문이 계속되자 불쑥 오하이오에서 성악 공부를 하던 때를 말한다. 그러다 그를 진짜 엔터테이너로 만들어 준 쟈니 카슨 쇼에 대한 기억을 묻자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다가 이혼해서 남남이 돼버린 전 부인을 언급하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아내가 올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두세달에 한차례씩 자니 윤씨가 있는 양로병원을 찾아본다는 임태랑씨(전 민주평통 LA회장)는 “잘 나갈 때 그렇게 가깝게 어울리던 친구들도, 한이불을 덮고 자며 한국에선 행복한 부부처럼 방송까지 탔던 전 부인도 아예 내팽개쳐버렸다.사람들이 그러는 게 아닌데 다들 참 야박하다”라며 혀를 찼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오른손’이란 작품이 있다. 전장을 휘저으며 적장의 목을 배던 한 군인이 늙어 양로병원에서 손을 들어올릴 힘조차 없이 천천히 죽어가는 과정을 묘사한 이야기다. 자니 윤씨의 노년이 그 작품과 겹쳐 안쓰러움이 밀려들었다.
2시간 넘에 이어진 인터뷰 시간 동안 윤씨를 유일하게 웃게 만든 단어는 ‘자니 카슨 쇼’였다. 그 순간이 몇초에 불과했지만 윤씨의 기억에서 가장 소중한 한 토막으로 남아 있음이 분명했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윤씨에게 찾아온 인생의 겨울은 지독하게 시렵고 추워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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