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성평등사회 비웃는 성차별 콘텐츠들

성평등이 거스를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가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문화 콘텐츠에 성 차별적인 요소가 들어가면 여지없이 논란이 터져 나오고, 심지어는 그 논란으로 인해 해당 콘텐츠가 실패하는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방영됐던 <브이아이피> 같은 영화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폭력수위의 표현이 지나치다는 지적과 함께 ‘여혐 논란’에 휘말렸고 결국 실패했다. 방송은 더더욱 민감하다. KBS <개그콘서트>에서는 외모 비하나 여성을 대상화하는 개그 코너들이 이제는 점점 사라져가는 추세다. 드라마 속 여성 캐릭터가 너무 수동적으로 그려지면 이제 작가의 여성 인식이 비뚤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이러니 지금 대중문화 콘텐츠를 접하며 등장하는 성차별에 대한 대중들의 민감함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우리 사회가 성평등한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는 이야기일까. 지향점은 맞지만 현실은 아직 그 지향점에 닿기에는 요원하다. 양성평등교육위원회와 YWCA가 2017년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콘텐츠들의 양성평등 관련 사안들을 모니터링한 결과가 그걸 말해준다. 그 결과는 여전히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 출연자들의 비율이 여성 출연자들의 비율보다 월등히 많고(약 60%:40% 수준), 수치적으로만 봐도 여전히 성차별적인 내용이 성평등적인 내용보다 많다(7월 기준 성평등 건수 5건, 성차별 건수 32건)는 걸 보여주고 있다. 그 내용들에는 외모지상주의, 성상품화, 여성의 주체성 무시 등등이 들어 있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성역할 고정관념을 조장하는 내용이나, 출산의 도구로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주체성을 무시하거나 성희롱,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내용들이 여전히 많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심지어 성평등을 추구하는 콘텐츠조차도 그 안에 성차별적 요소가 발견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작년 화제가 됐던 JTBC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은 여성 슈퍼히어로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었지만 후반부에 이르러 사랑하는 남자 앞에 연약한 여성이라는 틀에 박힌 성차별적 멜로의 틀로 퇴행하는 면을 보인 바 있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그것은 성평등이 우리가 지금 추구해야할 가치라는 데는 공감하고 있으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체화된 성차별적 인식들이 별 감수성 없이 표현되면서 생겨나는 일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알쓸신잡>에서 오죽헌에 간 유시민 작가가 안내문에 사임당에 대한 이야기가 축소되거나 ‘이율곡의 모친’으로만 적시된 것에 분개하는 모습에 공감하지만, 이 프로그램에 어째서 여성 출연자가 없는가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성차별적 인식이 나도 모르게 체화되게 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건 결국 미디어고, 그 안에 담겨지는 콘텐츠들이다. 그래서 성평등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관건 역시 미디어와 콘텐츠일 수밖에 없다. 성차별적인 요소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에 대한 모니터링은 그래서 중요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해지는 게 그 미디어가 어떻게 생산되고 소비되는가를 들여다보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관점이다.

성평등은 이제 미래에 경쟁력 있는 사회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가치가 되고 있다. 이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미디어가 앞장서야 한다. 미디어에 대한 모니터링과 함께 리터러시를 담은 미디어 교육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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