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배우 장혁(41)은 MBC 주말극 ‘돈꽃’에 출연한다고 했을때 주위의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미니시리즈 위주로 연기했던 그가 왜 주말극에 출연하는 거냐는 반응이었다.
“나는 미니와 주말 드라마의 차이를 몰랐다. 내가 마지막으로 주말극에 출연한 게 2000년 SBS ‘왕룽의 대지’였다. 이 때는 주말과 미니의 차이가 없었다. 주말에 하면 주말극이고, 주중에 하면 미니시리즈였다. ‘돈꽃’ 대본을 읽어보니 마음에 들었다. 편성이 빨리 안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출연하길 정말 잘했다.”
‘돈꽃’은 출생의 비밀과 불륜, 혼외자, 복수 등 소재면에서는 흥분하고 뒷목 잡고 넘어가는 장면이 대거 등장할 것 같다. 하지만 장혁은 차분하게 복수의 큰 그림을 완성해나간다.
“미국의 드라마 영화 ‘보통 사람들’의 차분한 안타고니스트 역 같은 걸 해보고 싶었다.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한마디 말이 무서운 역할이다. 그런 역을 맡으면 내가 고문해야 하고 소리 질러야 할 것 같지만 실제 작은 소리로 ‘밥 먹었어요’라고 말하는 게 더 무섭다.사실 강필주의 복수는 3일만 하면 다 끝낼 수 있다. ‘강변’이 청하 기업의 비리를 다 알고 있는데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 차라리 왜 복수를 할까보다는 왜 복수를 안할까 하는 이유를 찾는 게 낫다. 청하의 개라는 소리를 듣고 17년을 살아온 상실감 밑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저쪽에서 10개를 준비하면 나는 20개를 준비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모순 캐릭터가 됐다. 상가에서 웃어도 아픔을 이해할 수 있듯이. 소리를 지르지 않되 아픔이 있는 캐릭터, 그것이 처연함까지 가게 됐다.”
장혁은 포커 페이스인 강필주를 연기하기 위해 평소의 표현과 느낌에서 4 정도를 뺐다고 했다. 자신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강한 배우라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장혁이 ‘돈꽃’에 출연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좋은 대본 외에도 김희원 PD와의 인연때문이다. 2014년 MBC ‘운명처럼 널 사랑해’에서 ‘B팀’ 연출자로 만났고 그후 MBC 단막극 ‘오래된 안녕’을 통해 다시 한번 호흡을 맞췄다. 장혁은 이 두 편을 통해 김 PD의 연출과 편집의 강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
“김희원 PD가 하면 나도 하고싶었다. 애증이 있는 복수극은 김 PD가 잘 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복수의 감정은 강한데 아닌 척 하는 배역(강필주)이었다.”
장혁은 스태프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특히 김희원 PD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까지 않았다.
“촬영감독이 잘 담았고 PD가 여자분이라 섬세했다. CG를 잘 해 나의 세월을 잘 커버해주었다. 감독님은 제 연기에 플러스가 아닌, 곱하기를 준 분이다. 고속으로 촬영해 강필주의 심리를 영상과 잘 매치시켜 보여주었다. 음악도 잘 깔아주었다. 음악감독은 자신의 해석이 있는 분이다. 배우가 찰지게 연기해도 이렇게 무대를 깔아주는 게 중요하다.”
97년 데뷔한 장혁은 현장에서 21년간 경험을 쌓았다. 지금까지 버텨낸다는 게 녹록치 않았다. 그런데 이순재 선생님은 60년, 이미숙 선배도 40년.
“그분들도 준비해 오셨다. 그래서 나도 후배 장승조(장부천 역)에게 ‘너가 채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얘기해줬다. ‘승조야. 쉽게 못떠’라고 했다. 장승조와의 브로맨스도 전혀 예상한 게 아니다. 역시 빡빡함이 있어야 한다.”
장혁은 “저에게 욕을 했던 선배들이 많았다. 못된 선배도 있지만 좋은 선배도 많았다. 자세에 대해 지적해주면 긴장된다”면서 “이제는 나도 후배들을 끌어줘야 한다. 하지만 모든 후배에게 얘기해주지는 않는다. 애정을 느끼는 후배에게만 얘기해준다.그렇지 않으면 그 얘기는 폭력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을 쉽게 생각한 적은 한번도 없다. 아직도 뜨거움이라는 동력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장혁은 5개월간 촬영한 후 긴장이 풀리자 몸살이 났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