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아이유 얘기가 아니다. 지난 19일 목요일 저녁. 합정동에 위치한 ‘취향관’에선 두 번째 음악 살롱이 열렸다. 일명 ‘목요일은 밤이 좋아:Bring Your Own Music!’
세 시간 가까이 진행된 살롱에서 참여자들은 아이유, 비틀즈, 그리고 방탄소년단이었다. 감칠맛 나는 알앤비의 전설 존 레전드(John Legend), 영어 공부조차 훈훈하게 만들던 ‘팝송 빈칸 채우기’의 정석 웨스트라이프(Westlife)도 있었다.
각자 준비해 온 뮤지션의 이름은 곧 자신의 이름표가 되어 가슴에 붙었다.
취향의 공동체, 합정 취향관
취향관? 음악 살롱? 어리둥절 할 것이다. 그럼에도 막연한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들. 직접 그곳을 찾기로 했다. 합정역 8번 출구를 나와 10분 정도 걸으니 예스러운 가옥이 눈에 들어왔다. 취향관이었다.
지난 1월 서울 합정동에 문을 연 취향관은 문화 살롱 겸 사교 클럽을 표방한다. 3개월의 가오픈 기간을 거쳐 이 달부터 유료 멤버십 전용으로 정식 오픈했다. 취향관의 ‘관’은 공간이란 의미의 館(집 관)이기도 하지만 콘텐츠를 다루는 다양한 관점과 시선이란 뜻의 觀(볼 관)도 내포한다. 열심히 살지만 하루하루 소비되어 버리는 일상 속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행복을 찾으려는 시도다.
박영훈(32) 취향관 공동대표는 “퇴근길 들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며 “처음엔 대화가 가능할까 고민했는데 다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과시하려는 것보단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을 정립하고 자신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라고 설명했다.
사교의 장으로써 뿐 아니라 의미있는 활동에도 방점이 찍혔다. 박 대표는 “매 시즌마다 정해진 주제와 프로젝트를 갖고 일을 진행하려 한다”고 밝혔다. 첫 시즌은 ‘취향의 발견’이란 주제로 매거진을 만들 계획이다.
취향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그램은 SNS와 웹 사이트를 통해 볼 수 있다. 멤버십 회원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있고 멤버가 아니어도 신청 가능한 프로그램이 있다. 음악 살롱도 그중 하나다. 일반 예약 3만 원. 소개글을 살폈다.
‘나만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가지고 와서 함께 나누고, 들어요. LP, CD, 카세트테이프를 가져오시기를 권장하나 없으시면 그냥 오셔도 괜찮습니다. 음악에 얽힌 사연을 1분간 소개해주세요. 목요일 밤, 음악살롱의 낭만 DJ는 여러분입니다.’
음악 살롱의 규칙
취향관 202호엔 음악평론가 차우진, 북디자이너 정지현 가이드를 비롯한 총 7명의 ‘낭만 DJ’가 모였다. 서로의 본명은 모르며 자기소개가 가장 마지막 순서다. 대신 각자 들고 온 음악과, 견출지에 적는 뮤지션의 이름이 최초이자 최고의 정보였다.
“보통 직장을 소개하고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하는데, 과연 그게 나라는 사람을 얘기할 수 있을까 고민 했어요. 좀 더 취향에 근접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그래서 이 시간 동안은 상대방을 이름표에 있는 가수 명으로 지칭할 거예요.” (정지현 가이드)
유년시절 들었던 음악을 소개하는 것으로 살롱이 시작됐다. 웨스트라이프님의 선곡은 ‘My Love’. 2000년대를 풍미한 친숙한 멜로디가 스피커를 타고 흐르자 추억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중학생 때 팝을 많이 들었어요. NOW(팝 컴필레이션 앨범) 이런 거 다 사고. 진짜 심하게 좋아해서 언니들이 하는 정모 같은 것도 여러 번 가고 멤버들 이름 다 외우고 그랬죠.”
비틀즈님도 아이유님도 ‘맞아, 맞아’를 연발했다. 처음의 서먹함은 온 데 간데 없이 다들 수다쟁이였다. 서로 다른 삶을 지나왔지만 그 시절 그 음악을 듣던 이들은 같은 감정을 공유했다.
“이분들(더 모노톤즈) CD가 절판됐는데, 전 그걸 모르고 구입한 거죠. 왔는데 LP가 온 거예요.”
“저 똑같은 경험 있어요! 그래서 턴테이블 샀죠.”
2부는 요즘 듣는 음악을 공유하는 시간이었다. 더 모노톤즈님은 최근 두 멤버의 성폭력 논란으로 해체한 밴드의 첫 앨범 ‘Into The Night’을 가져왔다. 앨범은 2016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음반’ 부문을 수상했다.
하지만 더 모노톤즈님이 이들의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공교롭게도 해체 시기와 맞물린 때였다. 본래 록 음악을 싫어했다는 그는 공연을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밴드가 사라졌다고 했다. 마음껏 좋아할 수도 마냥 아쉬워할 수도 없었다.
주인공이 워크맨을 듣는 장면이 있는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ost도 카세트테이프로 나왔다. 카세트와 워크맨이 가진 아날로그적 감성에 우린 또 어린애처럼 들떴다.
“여기 올드팝들이 많은데 저는 잭슨 파이브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애기 목소리는 마이클 잭슨 6살 때 목소리예요. I Want You Back이란 노래죠.” (차우진 가이드)
살롱이 끝날 무렵 비틀즈님은 못내 아쉬워했다. “오늘 이후로 어떤 음악을 듣는다면 ‘다음 주에 들고 가야지’란 생각이 들 것 같아요.”
우리가 잊어버린 음악, 그리고 사람
음악이 주제인 음악 살롱이지만 사실은 사람이 주제였다. 음악이 왜 위로가 됐는지 말하다 보면 결국 자기 얘기가 됐다.
다들 음악을 편하게 듣는데 조금은 불편하게 들으면 어떨까, 다들 혼자 듣는데 다 같이 들으면 어떨까. 음악 살롱 기획은 음악이란 ‘경험’에 집중했다.
정지현 가이드는 “음악이 사람을 하나로 만든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계산에서 나오는 감정이 아니지 않나. 음악엔 그런 긍정적인 공명이 있다”라고 말했다.
결국 음악은 ‘공동체적인 경험’이기도 하다. 차우진 가이드는 “같은 정서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어딘가 분명히 있고 나와 연결돼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음악이 그런 역할을 하는 거고. (이런 감각을) 우린 어느 순간 잊어버렸는데 이는 사실 음악만 잊어버린 게 아니라 일상에서 타인과 만나는 접점이 점점 줄어든 것”이라며 “그런 접점들을 더 많이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취향은 설명할 필요도 이해받을 필요도 없다. 결국 취향은 고집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그 이유가 명확한 것. 이를 감추고 변명하던 때는 지났다. 고집스런 취향을 통해 우린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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