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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개정안을 통한 정부 정책 방향과 함의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주 52시간 근무라는 개정안이 가져야 할 본질이 빠져있는 게 문제다. 주 52시간 근로가 저녁 있는 삶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지만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저녁 있는 삶이 아니라 일자리 없는 삶을 전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드라마제작사가 직면한 현실을 산술적으로 정리해보면 논자가 우려하는 심각성을 이해할 수 있다. 16부작 미니시리즈를 제작한다고 하면 제작일수가 100일 정도 된다. 하지만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게 된다면 제작일수는 200일 정도로 약 2배 증가한다. 제작일수가 두 배로 늘어난다는 것은 제작비가 두 배 가까이 들어감을 의미한다.
방송사는 지금도 드라마제작사에 전체 제작비의 50% 정도를 지급하면서 대부분의 지적재산권은 방송사에 일방적으로 귀속시키고 손실을 감수하라고 한다. 편성권을 가진 원청(原請) 사업자인 방송사와 드라마제작사 사이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계약관행 개선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사가 늘어나는 제작일수에 필요한 제작비를 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드라마제작사가 제작비를 확보하지 못해 제작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드라마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짐을 의미하며 이는 곧 일자리가 상실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지상파 방송사업자나 방송채널사용사업자 혹은 그들과 특수관계에 있는 대형 드라마제작사는 일반적인 외주사처럼 제작비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겠지만 늘어나는 제작일수에 대해서는 대동소이하게 생각할 것이다. 결국 드라마제작일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1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안에 제작할 수 있는 제작편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다는 것이고 이는 지금보다 훨씬 경쟁적으로 제작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은 제작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가지 산술적인 계산이 조금은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드라마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저녁 있는 삶은 고사하고 일자리가 없어 먹고 살기 위해 24시간 일할 수밖에 없는 삶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 된다.
근로시간 단축 위반에 대한 처벌을 유예하고 계도기간을 갖겠다는 기사를 접하고 실소를 금할 수 없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 급급해 본질을 고민하지 않고 구색 맞추기 식의 탁상공론 행정이다. 지금이라도 업계 목소리를 경청하고 본질이 빠진 현상이 무엇인지,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은 본질이 무엇인지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다면 일자리 상실을 넘어 업계가 자멸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