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마약자금 세탁, 합동 단속 그리고 4년

마약자금
LA다운타운 의류업체 대상 마약관련 자금 세탁 단속 과정에서 압수된 현금

LA지역 한인 의류업계에게 2014년 9월 10일은 아픈 손가락이다.

어쩌면 한인 의류업계에서는 미국 뿐 아니라 전세계에 큰 충격을 준 2001년 9.11사태 못지 않은 잊지 못할 악몽을 남긴 날로 기억되고 있다.

당시 LA패션디스트릭트에는 마약 자금 세탁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연방수사국(FBI)과 연방 마약단속국(DEA), 지역 경찰, 국가 안보국(HSI), 연방 국세청(IRS) 그리고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사법당국이 거의 총동원돼 1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투입되다 보니 세계 전역의 이목은 LA다운타운 의류시장으로 집중됐다.4년이 지난 2018년 9월 여전히 남가주 지역 한인 경제계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한인 의류업계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지 되짚어 봤다.

■ 2년간의 혼란

상상치 못했던 큰 일을 겪게 된 한인 의류업계는 이후 2년간 극심한 혼란기를 겪었다.하지만 이를 단순히 마약자금 세탁 혐의에 따른 대규모 합동 단속의 여파로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이미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었지만 한인 업계는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어려움을 자처했다는 의견에 무게감이 실린다.

당시 사태로 인해 현금 매출이 크게 줄었다는 의견이 많지만 이미 대부분의 의류 소매상들을 찾는 고객들의 결제 방식이 데빗이나 크레딧 카드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던 점을 한인 의류업계는 간과하고 있었다.

현금 결제가 많은 의류 소매상들은 당시만 해도 세일즈 텍스를 비롯해 세금을 줄이겠다는 목적으로 LA다운타운 의류 도매 업계에서 이른바 무자료 현금 거래를 선호했다.하지만 고객들의 결제 방식이 빠르게 변함에 따라 더이상 무자료 현금 거래를 할수 있는 여력이 줄게 된 것.

멕시코를 중심으로 한 중남미 고객이 급감한 것 역시 4년전 사태와 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멕시코는 2012년 12월 한때 최대 1000%에 달했던 대중국 보복 관세 조치를 해제함에 따라 미국을 경유했던 중국산 의류 제품 유입 경로가 직거래 방식으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굳이 외환 규제를 뚫고 LA까지 와서 도매로 의류 제품을 구매할 이유가 줄게 된 셈이다.

멕시코에 본격적으로 풀리게 된 중국산 저가 의류는 인근 중남미 국가까지 유통망이 넓어지게 됐다. 결국 당시 사태로 인한 어려움 보다는 변화하는 시장 환경 특성상 겪을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사실 당시 한인 의류업계를 가장 괴롭힌 문제는 한인은행권의 ‘배신’을 들수 있다. 당시 조사를 받은 10여곳의 한인 업체와 이들과 주로 거래하던 협력사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의진원지로 한인 은행권을 지목하는 이야기가 많았다.여기에 한발 더 나가 직간적접으로 조사와 연관이 있는 업체들에 대한 금융 지원을 줄이거나 아예 끊어 버리는 일까지 생겨 일부 소규모 한인 협력사들은 문을 닫는 일까지 일어나게 됐다.

■ 성공적인 구조조정

초기 극심한 어려움을 겪던 한인의류업계는 나름의 구조조정을 통해 시장 재편에 나섰다.

방만하게 운영되던 인력 구조부터 다 잡아 지난 4년간 20%가까운 직원들을 줄였고 업체간 스카웃 경쟁으로 과열됐던 전문직종들의 급여 수준은 큰 차이 없이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고비용, 저효율의 대표적인 문제로 지적됐던 쇼룸 임대료 역시 2년여전 현실화됐다.

한때 20만 달러를 넘어섰던 3년 계약시 마다 지불하고 사라지는 키머니는 이미 2년전 자취를 감췄고 임대료 역시 일부 도매 상권에서는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비 부문에서 최소 20%이상의 비용이 줄었다는 것이 업주들의 의견이다. 다양한 시스템 도입도 이 기간 급물살을 탔다.

4년전만 해도 일부 업체에서만 볼수 있었던 기획, 생산, 판매, 재고 관리 등을 실시간 파악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이제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다.

인건비와 임대료에서 절감한 부분을 과감하게 시스템에 투자한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스템을 기반으로 미국내 주요 지역에서 열리는 의류트레이드쇼와 온라인 판매에 역량이 크게 늘어난 것 역시 4년간 업계가 일군 수확으로 볼수 있다. 특히 온라인 판매는 2014년 당시 연간 5억 달러 안팎의 추산치가 현재는 15억 달러로 3배 이상 늘어난 것을 볼수 있다.

미개척지로 분류되던 유럽 등 신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하는 한인 업체들도 속속 등장하는 것 역시 업계의 긍정적인 변화로 볼수 있다.

과거처럼 현금 매출에 대한 보고를 숨기는 업체도 이제는 찾아 보기 힘들어졌다. 자연히 금융권과의 거래 관계와 신용도가 높아져 각 업체들의 재투자를 위한 상업용 대출 활용도 활성화되고 있다.

■ 여전히 남은 해결 과제

큰일을 겪고 4년이라는 다소 짧은 기간이지만 한인의류업계는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는 많다.

최근 몇년사이 중대형 의류 소매 체인들이 과도한 상가 임대료와 방만한 경영에 발목을 잡혀 1만개 이상 매장이 문을 닫을 정도로 의류 소매 시장은 격변기를 겪고 있다.특히 매번 파산하는 업체들이 나올때 마다 이들 업체와 거래했던 한인 의류 도매 업계는 미수금 문제로 인해 어려움이 가중 되곤 했다.

이로 인해 안정적인 운영과 함께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는 TJX, Ross와 같은 오프 프라이스 대형 체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거래처가 몇년사이 급격히 줄다 보니 이른바 ‘잘나가는’ 오프 프라이스 체인과의 거래를 위해 과도한 납품 가격 경쟁을 여전히 펼치고 있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다.이제는 30년을 훌쩍 넘긴 한인의류업계의 차세대 전환도 단기간에 해결할 과제로 남아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던 장수 한인 의류 업체들이 차세대 전환에 실패해 자발적인 ‘흑자폐업’에 이르는 업체들이 눈에 띠게 늘고 있다.

1세와 차세대간 자연스런 세대교체를 위한 업계의 고민과 해결 방안이 필요해 보인다.

한인의류협회 김영준 회장은 “유통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속에서 4년전 마약 수사는 강력한 예방 접종을 맞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한인 업계의 각성과 변화 및 실천의 필요성을 알게 해 준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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