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희의 커피 이야기] 결점두로 내린 커피, 다양한 삶의 맛

커피를 볶기 전 꼭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건 바로 콩 고르기이다. 좋은 음식의 기본이 좋은 재료이듯 좋은 커피의 기본 역시 좋은 생두다.

콩 고르기는 좋은 재료를 준비하는 의미도 있지만 중요한 제례예식 전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는 의식을 치르듯 로스팅 전 마음을 가다듬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콩 고르기는 커피를 만지는 사람에게는 절대 거를 수 없는 의식이다. 그 의식을 통해 한 알의 커피콩으로 해석된 새로운 세상 속에 참여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고 그 앞에 선 보잘 것없는 나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추앙’의 시간을 가지게도 한다.

콩을 고르는 일은 맛과 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생두를 골라내는 일이다. 커피를 마셨을 때 나올 수 있는 안 좋은 맛과 향은 보통 흙냄새, 가죽냄새, 동물냄새, 지푸라기 냄새 같은 것이나 발효가 너무 된 듯한 맛이나 향, 또는 병원냄새, 아니면 탄 음식에서 나는 듯한 매캐한 향이나 맛, 또는 고무냄새 같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맛과 향 또한 주관적인 것이라 누군가에게는 불쾌한 감정을 일으키는 이런 향들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 반대의 작용을 할 수도 있는 것이라 쉽게 이것을 불쾌한 맛과 향이라 정의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커피를 만지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맛과 향을 불러오는 콩들을 골라내야 하는 데 그런 콩들을 결점두라 부른다.

결점두는 보통 심각한 것과 아닌 것으로 나누는데 우리가 흔히 스페셜티 커피라 부르는 커피는 맛과 향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할 뿐 아니라 심각한 결점두가 없어야 하고 마이너한 결점두의 양 또한 정해 놓은 기준에 적합해야 얻을 수 있는 이름이다.

심각한 결점두는 수확 발효 건조과정에서 미생물에 의해 썩거나 손상된 콩과 곰팡이가 핀 콩, 그리고 벌레가 심하게 먹어 썩어버린 콩, 그리고 커피콩이 아닌 이물질의 경우 심각한 결점두로 분류한다. 이런 콩을 맛보면 심하게 발효된 향이나 석탄 맛, 페놀 맛, 또는 의약품 향 같은 것이 느껴지게 된다.

결점두이긴 하나 심각한 결점두가 아닌 경우는 살짝 과발효되어 얼룩이 진 콩이나, 커피콩의 속껍질이 제거되지 않은 콩, 깨진 콩, 금이 간 콩, 살짝 벌레 먹은 콩, 덜 익은 콩, 너무 익은 콩 등이 있다. 이런 콩들 또한 볶고 나면 발효된 맛, 과한 신맛, 풀 맛, 흙냄새, 탄 냄새, 과한 쓴맛 등이 나게 된다.

콩을 고르고 난 후 나오는 심각한 결점두들은 버리고 마이너한 것들은 유리병에 모아 둔다. 콩을 고르는 의식을 치른 만족감을 시각적으로 보상받고 싶은 심정이기도 하고 왠지 낙오된 것 같고 소외된 것 같은 이 콩들을 모아 커피가 되지 못한 한을 씻어줄 씻김굿 같은 로스팅을 해주고 싶어서다.

어제는 미국 방문 중인 윤석열 김건희 부부에게 어울릴만한 커피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심각하게 손상된 결점두들을 볶은 콩으로 만든 커피가 어떨까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시커멓게 변해버리거나 허옇게 변해버린 콩들이나 푸른 점이 박힌 콩들을 모아서 볶아 ‘굥커피’란 이름 붙일까 생각했는데 이내 그런 생각을 한 것 자체가 왜인지 커피콩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며칠 전 볶아 두었던 씻김굿용 결점두 커피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구인 케맥스를 통해 정성스럽게 내렸다. 맛을 보니 역시…이번에는 조금 진하게 프랜치 로스팅 정도까지 볶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탄내 뒤로 넘어오는 건초향, 흙맛, 치과향 등이 잡내와 함께 묻어 나오지만 그리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왠지 잡내는 다양한 삶의 향으로 흙맛은 첫사랑의 아련함으로 건초향은 시골집 정겨운 냄새로 치과향은 라프로익(스코틀랜드 아일래이 섬에서 생산되는 스모키향 진한 싱글몰트 위스키)의 진한 피트향으로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다시는 굥커피 같은 더러운 생각은 하지 않기로 다짐하면서 죗값을 치르듯 한 입 또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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