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보내기 위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를 볶았다.
보통 자메이카 하면 레게, 밥말리, 또는 우사인 볼트, 아니면 영화 쿨러닝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커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블루마운틴 커피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예멘 모카 마타리, 하와이 코나 펜시와 더불어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로 꼽히지만 예전부터 커피를 마셔온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단연 블루마운틴 커피에 대한 선호도가 압도적이다.
블루마운틴 커피를 선호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고급진 맛과 향을 말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실제 마셔보면 어느 정도 수긍이 된다. 하지만 블루마운틴의 명성은 사실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측면이 많다.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된 자메이카의 커피산업은 1960년대 일본과 수교하면서(왠지 1960년대 우리나라의 한일협정도 생각난다) 일본 자본에 의해 일어서게 된다.
일본 자본은 자메이카에서 생산된 커피의 대부분을 일본으로 가져가게 되고 일본 이외의 나라들에서 소비할 커피량은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 거기에 일본은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영국 왕실에서 마시던 커피라는 이미지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를 마케팅을 하게 되고 결국 공급량 부족과 고급스런 영국 왕실 이미지 메이킹이 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커피의 명성과 몸값을 천정부지로 올리게 된다.
이런 명성을 듣고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을 처음 마셔보면 살짝 당황할 수 있다. 마시기 전 풍겨오는 그 달달하고 고소한 그러면서도 살짝 톡 쏘는 듯한 캐러멜향과 초콜릿향이 주는 기대를 가지고 첫 모금을 마시면, 그 기대와는 달리 절제되고 담담한 맛이 주는 간극이 의외로 크게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블루마운틴을 마시면 목포가 생각이 난다. 목포도 블루마운틴만큼이나 간극이 크다. 처음 목포를 생각했을 땐 목포의 눈물이나 핍박받던 정치인 김대중 등이 연상되었지만 막상 가본 목포의 첫인상은 의외로 화려하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전라도 목포 하면 화려하고 맛깔스러운 음식을 떠올리겠지만 목포의 음식은 그 화려한 색감과 향에 비해 그 맛은 의외로 엄청 절제되어 있고 담백하다. 처음에는 그 절제된 담백한 맛이 우리 현대사의 정치적, 사회적 억압이 사람들에게 내면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 절제와 담담함 속에서 풍겨 나오는 품위와 우아함은 억압의 내면화나 화려함 밑에 깔린 슬픔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목포가 가진, 화려함과 절제의 커다란 간극 밑에 흐르는 기품이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에서도 느껴진다.
한동훈이 1박 2일 일정으로 목포를 방문했다. 법무부 장관의 직책과는 상관없는 광폭행보가 차기 대권행보라는 의견도 있고, 박근혜를 퇴진에 이르게 한 방아쇠 역할을 했던 최서원(순실) 소유라고 알려진 테블릿이 조작되었다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변희재를 피해 선택한 여행이었다는 설이 있다.
진위가 무엇이든 간에 목포는 한동훈과는 어울리지 않는 도시다. 그가 목포하면 떠오르는 ‘목포는 항구다’의 가수 이난영의 도시를 찾고 싶었다고 하지만 그런 모범생이 이난영을 이전에 알았을 리가 없다. 그대는 DJ처럼 세상 풍파를 견딘 적이 있는가? 깐죽거릴줄만 알았지 중후한 신사인 적인 있었는가?
슬픔을 짊어질 힘이 없는 자는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
예멘 모카 마타리에서는 사막에서 수행하는 영적인 수도자의 느낌이 든다. 그리고 하와이안 코나를 만나면 맛과 향이 모두 맵시 나고 폼나고 화려한, 그래서 통통 튀는 예쁜 젊은이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한마디로 세상 풍파를 견뎌온 점잖고 중후한 신사의 느낌이 난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점잖은 척이 아니라 점잖다.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짊어질 힘도 같이 느껴지는 그런 커피이다. 한동훈이 법무장관에 취임하면서 검사직을 사임하는 글을 검사 내부 통신망에 올렸을 때 한국 사회에서 아부의 달인과 동의어인 검사들이 수백개의 찬양 댓글을 달았다.
그 중 하나가 “법무연수원에서 모닝커피 드실 때 인사드린 기억이 난다”라는 낯뜨거운 추억 소환이었다. 제발 그 모닝 커피가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은 아니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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