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희의 커피 이야기]쫄지마, 커피 맛은 평등해

인사동 찻집-1
언젠가 인사동에서 마셨던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케이샤 커피 맛을 잊을 수 없다. 고즈넉한 한옥을 카페로 개조해 운치있는 분위기에 그윽했던 재스민 향기까지 내 생에 최고의 커피맛이었다. 사진은 인사동 한적한 골목길의 커피숍. [Photo Credit / malee]

“저는 커피를 정말 좋아해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분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어떤 커피를 좋아하세요?” 이 분들에게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은 “커피는 좋아는 하는데 커피 맛은 잘 몰라요”

돌이켜보면 나도 커피에 빠져 공부하고 연구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대답해왔다. 커피를 좋아해도 커피 맛 모르고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잘 모르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 취향을 갖고 있다.

즉, 나는 어떤 커피를 좋아하는지 내 몸은 알고 있는데 그것이 내 언어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커피 맛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커피와 내가 좋아하지 않는 커피의 맛과 향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익숙지 않을 뿐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맛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신맛과 단맛 그리고 쓴맛과 짠맛. 여기에 확실하게 표현하기 힘든 감칠맛까지 기껏 다섯 가지 정도 아닐까?

커피 역시 마찬가지다. 커피는 크게 세 가지 맛으로 나눌 수 있다. 기본적으로 쓴맛의 바탕 위에 신맛과 단맛이 붓과 물감이 되어 커피라는 그림을 그린다.

그중 가장 물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신맛이다. 신맛은 그 커피의 캐릭터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신맛은 재스민과 장미 같은 향기를 내뿜는 꽃향, 카모마일이나 홍차 향기를 풍기는 티향, 블루베리나 딸기 같은 향을 맡을 수 있는 베리향, 건포도 같은 향이 나는 말린 과일향, 그리고 사과나 자두, 배나 포도 같은 향을 내는 과일향, 오렌지나 레몬 등의 감귤 향 등이 있다.

또한 구연산이나 사과산 같은 식초향도 있고 와인이나 위스키 처럼 발효된 신맛이 나기도 한다. 신맛은 아니지만 허브나 야채의 향과 맛도 커피라는 그림에 쓰이는 한 부분이다. 사실 이런 맛들은 보통 약배전 (라이트 로스팅) 커피에서 보다 풍부하게 즐길 수 있다.

그 다음 느낄 수 있는 커피의 맛은 단맛이다. 단맛은 그 자체로 느끼기도 하지만 커피의 다양한 향에 같이 묻어 나오는, 즉 향이라는 물감이 캔버스 위에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표현하는 맛이다.

단맛은 흑설탕, 캐러멜, 바닐라, 또는 메이플 시럽과 같은 맛으로 표현이 된다. 이 단맛은 중배전(미디엄 로스팅) 이상의 볶음 강도를 가진 커피에서 잘 드러난다. 하지만 단맛은 약배전 커피의 과일향이나 감귤류의 달달한 향 또한 중요한 단맛의 한 부분이다.

단맛은 아니지만 땅콩, 아몬드, 호두 같은 고소한 견과류의 맛이나 코코아나 밀크 초콜릿 같은 쌉싸름하면서도 달달한 맛 또한 단맛처럼 커피 향의 질감을 드러낼 수 있는 주요한 부분이다.

커피를 표현할 때 쌉싸래함이란 표현이 빠지지 않듯 쓴맛은 커피의 기본 바탕과도 같은 맛이다.기본 같다는 말은 마치 그림에서 물감을 제거하면 남는 것이 캔버스이듯, 커피의 향이 제거되면서 남는 마지막 맛이 쓴맛이라는 것이다.

쓴맛의 개성에 따라 화선지나 도화지나 캔버스나 천 위에 그린 그림처럼 다른 느낌의 커피가 된다. 쓴맛은 커피콩을 오래 볶을수록 많이 나온다. 커피콩은 많이 볶아질수록 그 콩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향이 제거되며 카라멜 라이징 과정을 거쳐 단향이 입혀지는 과정인데 그러다 보니 쓴맛은 커피 고유의 향이 많이 제거된 강배전(다크 로스팅) 커피에서 가장 잘 즐길 수 있다.

다크 초콜릿 같은 맛이 쓴맛의 대표적인 맛이고 또한 강배전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탄향이 주는 스모크 한 향이나 톡 쏘는 후추나 넛맥 같은 향신료의 향도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커피의 맛과 향은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각종 발효기술을 이용해 다양한 커피가 생산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커피 산업이 거대해지면서 다양하고 전문적인 언어들이 상업적인 이유로 생성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런 언어는 와인 업계의 소믈리에처럼 커피 생두와 원두의 품질을 결정해야 하는 커피 큐그레이더나 바리스타와 같은 전문가들에게나 필요한 것이지 실생활에서 진심으로 커피를 즐기는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어느 분야에 대해서 전문 지식이 없고 전문적인 언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해서 그 분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미리 재단하고 검열하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전문가와 우리 사이에 위계가 생기게 되고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권력관계가 형성되면 결국 우리는 우리가 가진 언어를 포기하게 되고 우리의 기호와 선호에 대한 선택마저 전문가에게 맡겨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된다.

상대가 전문가라고 쫄지말자! 어차피 전문가도 혀로 느낄 수 있는 맛의 종류는 정해져 있고 코로 느낄 수 있는 향도 나이 먹어감에 따라 무뎌진다.

그들이 독점한 그들만의 언어로 커피를 표현한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언어로 우리가 마시고 있는 커피를 표현하면 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떠올려본다. 언젠가 인사동에서 마셨던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케이샤 커피.

나는 그 커피의 맛을 이렇게 표현해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맛있는 저녁 식사와 달달한 후식을 먹고 같이 손잡고 동네 밤 산책을 할 때 맡았던 재스민 꽃향기 같다고.

그냥 커피 맛은 각자의 언어로 표현하면 된다. 누가 어떤 커피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그냥 좋아하는 커피를 마셨을 때 나의 느낌을 표현하면 된다. 그래야 커피 앞에서 우리는 평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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