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여행 중 난감한 일을 겪었다. 호텔 서비스 생수까지 챙겨나오는 알뜰함 속에서 막상 금고에 여권과 핸드폰을 놓고 나온 것이다. 다음 여행지에 도착해서 혼비백산 호텔로 전화했다.
법조인들은 공부를 잘하니까 영어도 잘할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입시에 영어가 필수인 로스쿨 출신과 달리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들의 영어 실력은 편차가 크다. 어학이 선택인데, 영어보다는 상대적으로 고득점이 가능한 제2외국어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변호사가 돼서도 영어를 사용할 일이 별로 없다. 그래서 영어 실력은 고3때 정점을 찍고 매년 하향하고 있다. 사법시험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한 원죄로 필자 역시 분실물을 보관해달라는 말 한마디 하는데 쩔쩔맸다.
크게 성과가 나지 않을 일에 도전하는 세대별 바보 시리즈가 있다. 50대에 싱글 쳐보겠다고 골프 레슨받는 사람, 60대에 해외 여행하겠다고 영어 배우는 사람도 그중 하나다. 바보가 되기는 싫고 그렇다고 여행하면서 벙어리가 될 수도 없고, 이 나이에 영어공부를 다시 해야 하나 진퇴양난 중에 희소식이 들린다. 삼성전자가 갤럭시 S24 시리즈를 ‘온디바이스 인공지능(AI) 스마트폰’으로 개발했다고 한다. 별도의 앱을 깔지 않아도 외국인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실시간 통역이 되는 기능이다. 조만간 출시할 이어폰 버즈3에도 이 기능이 탑재된다고 한다.
이제 인공지능(AI)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세상이 됐다. 핸드폰, 음성인식, 드론, 자율주행차 등등 어린 시절 공상과학영화에서 보았던 것들이 다큐가 되는 세상이다. 법조계에도 최근 이른바 ‘법률 산업 혁명’이라는 AI 리걸테크(Legal Tech)가 화두이다. 리걸테크는 변호사제도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는 1894년 갑오개혁과 2009년 로스쿨제도 도입보다도 더 빠르고 더 광범위하게 변호사업계, 나아가 법조계 전체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법률(Legal)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인 리걸테크는 법률이나 판례 검색·문서 작성이라는 초기 단계를 뛰어넘어 현재 정보통신기술(ICT) 및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선보이는 새로운 유형의 법률서비스로 확장됐다. 이는 변호사가 효과적인 소송전략을 수립하도록 도와주는 한편, 고객 상담·문서 관리와 같은 부수적인 사무실 운영에 있어서도 시간과 비용을 절감해준다.
이미 미국에서는 초당 10억 장의 판례를 검토하며 법률문서를 분석한 후 의뢰인의 질문에 답변하는 AI ‘로스(ROSS)’와 법정에서 피고인의 재범가능성을 분석해주는 형량판단 AI ‘컴퍼스(Compas)’가 사용되고 있다. 작년 3월 초에는 법률문서 검토, 증인 신문 준비, 유사 판결문 검색, 계약서 검토, 기초적인 법률자문 등을 하는 최신 GPT-4에 기반한 AI ‘코카운슬(CoCounsel)’이 등장했다. 영국에서도 인터넷 채팅으로 주차위반 과태료 이의신청사건을 도와주는 챗봇 ‘DoNotPay’가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리걸테크의 급격한 발전은 변호사업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으며, 현재 영미의 로펌들은 그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리걸테크의 필요성과 발달을 인정하고 변화를 과감하게 받아들인 것이다.
이처럼 비교불가의 빠르고 정확한 검색, 저렴한 비용, 편리한 접근성 등으로 장착된 인공지능 변호사들은 인간 변호사들을 대체할 것인가. 실제로 미국의 ‘로지스(Logis)’, 영국의 ‘케이스 크런처 알파(Case Cruncher Alpha)’, 이스라엘의 ‘로긱스(LawGeex)’ 등 인공지능 변호사와의 대결에서 인간 변호사는 연일 참패하고 있다. 한국도 이미 2019년 근로계약서를 분석하고 자문하는 ‘법률인공지능(Alpha-Law) 경진대회’에서 인공지능팀이 1등에서 3등까지 석권한 바 있다.
리걸테크 산업은 법률시장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법률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동맥인 것처럼 리걸테크 역시 국가 시스템의 근간이 된다. 따라서 이를 둘러싼 국가 간의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하다. 국내에서도 로앤컴퍼니, 로앤굿, 로폼, AI링고, 엘박스, 인텔리콘 연구소 등 리걸테크 기업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나, 각종 규제와 변호사단체의 강한 반대에 발목이 잡혀 있다.
리걸테크는 낮은 가격에 높은 품질의 법률 서비스 제공으로 국민의 사법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한편, 변호사의 법률사무소 운영에 있어서도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이제 무조건적인 규제와 반대보다는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규제 완화와 국제경쟁력을 위한 폭넓은 지원을 검토할 시점이다.
또한 리걸테크 시대에 맞는 법률사무소의 운영과 이에 따른 법조윤리를 새롭게 정립하는 작업이 병행돼야 할 것이다.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리걸테크’가 이상적이겠지만, 최소한 인간을 위한 리걸테크가 되도록 하는 법조윤리가 자리 잡는다면 인간변호사가 인공지능 변호사에게 대체되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이찬희 변호사·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