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자금을 투자가 아닌 대출 상환에 할애하는 금융 소비자의 비중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빚투·영끌 등을 통한 자산 불리기가 성행했지만, 기준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대출금리 수준이 급격히 오르며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진 영향이다.
4일 하나은행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대한민국 금융소비자보고서 2024’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만 20~64세 금융소비자 5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가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돈이 생기면 대출을 우선 상향하겠다고 답한 금융소비자의 비중이 36%로 ‘빚투·영끌의 자산 증식’을 선택한 비중보다 1.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돈이 생기면 저축·투자보다 대출을 상환하는 게 가장 현명한 투자법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는 비율도 55%로 과반이 넘었다. 이에 반대하는 응답은 12.3%에 불과했다.
대출 보유자 중 최근 1년 내 대출을 일부 혹은 전액 중도 상환한 비율은 61.1%로 절반을 넘었다. 보고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출 레버리징(차입 투자)을 통한 자산 증식이 유행했지만, 올해는 투자보다 대출 상환을 먼저 고려하는 디레버리징(차입 청산) 의향이 높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금융소비자들의 저축 및 투자 여력은 전반적으로 줄어들었다. 가구소득에서 고정/변동지출 및 보험료, 대출상환액을 제외하고 남은 금액을 저축 가능액으로 간주할 때, 가구소득에서 저축 가능액(저축여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30.1%로 지난해(30.9%)와 비교해 줄어들었다.
특히 50% 이상 저축여력이 있는 비중은 같은 기간 25.1%에서 28.1%로 늘어났다. 하지만 저축여력 30~50% 미만 구간은 29.9%에서 24.4%로 5.5%포인트 감소했다. 보고서는 “금융소비자의 재정 상황이 개선된 것으로 보이지만 가계 재정이 양극화되는 추세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금융소비자들은 2024년 가계 재정 또한 2023년과 같은 거라고 내다봤다. 대출부담 등 가계재정 전망을 묻는 질문에 ‘변화없음(비슷)’을 택한 비중은 50.7%로 과반이 넘었다. 좋아질 것이라고 내다본 비중이 35.9%로 뒤를 이었으며, ‘악화’를 전망한 비중은 13.4%에 불과했다.
금융자산 포트폴리오에서는 투자보다 저축 자산 비중이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금융자산 중 수시입출금·예적금 비중은 2023년 기준 45.4%로 지난해(40.3%)와 비교해 5%포인트가량 늘었다.
일반적으로 저축자산 비중은 금융자산이 낮을수록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올해는 3000만원 이상 자산 보유층 중에서도 증가폭이 크게 나타났다. 기준금리가 지속 상승하며, 저축자산을 활용한 자산운용이 활발해진 결과다.
금융자산 중 투자·신탁이 차지하는 비중도 1년 새 23.4%에서 26.1%로 소폭 증가했다. 그러나 이는 고자산가층에서 투자자산이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 금융자산 1억원 미만 금융소비자층에서는 투자·신탁의 비중이 소폭 줄었다. 하지만 금융자산 5억원 이상 금융소비자의 경우 1년 새 투자·신탁 비중을 23.2%에서 40.9%로 대폭 확대했다. 김광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