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직원들이 최근 인텔에 납품한 첫 하이 뉴메리컬어퍼처(NA)’ EUV(극자외선) 장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SML X(옛 트위터)] |
글로벌 반도체업계에서 파운드리(위탁생산) 수주 경쟁력 확보를 위해 최첨단 기술인 2나노(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 도입 각축전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2나노 구현을 위한 핵심 장비가 인텔에 먼저 공급돼 삼성전자 등 K-반도체가 주도권을 놓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지만, 이는 ‘수싸움’을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데 무게가 더 실리고 있다.
최근 ASML이 자사의 첫 ‘하이 뉴메리컬어퍼처(NA)’ EUV(극자외선) 장비를 인텔에 납품했다고 밝혔다. 하이NA 장비는 아직 누구도 성공하지 못한 2나노 공정 기반 양산을 위해 필수적인 차세대 EUV 장비다. 전세계에서 ASML만이 제조할 수 있고, 올해 파운드리 시장의 키를 쥐고 있는 장비로 꼽힌다. 가격은 1대당 4000~5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중요한 장비를 인텔이 가장 먼저 확보하는데 성공하자 삼성전자가 2나노에 있어서 인텔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하이NA 장비를 가장 먼저 공급받지 않는 것이 고도의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한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삼성은 물론 TSMC도 인텔보다 하이NA를 늦게 받는 것은 전략적 결정”이라며 “통상 가장 먼저 생산되는 1세대 제품은 첫 적용 과정에서 오류도 많이 나고 고칠 것이 많아 사실상 못 쓰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삼성과 TSMC는 인텔이 1세대 하이NA 장비를 사용해보면서 겪을 시행착오가 전부 해결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라며 “하이NA 초기 물량을 인텔이 받는 건 기술 경쟁력에 있어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인텔이 하이NA 장비를 써보는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들이 개선되고 안정화된다면, 삼성과 TSMC 입장에선 천문학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인텔은 올해 2나노, 2025년 1.8나노 진입에 성공하겠다는 목표를 여러번 강조해왔다. 올해부터 파운드리 회계를 분리하면서 본격적인 외부 수주에 나서는 동시에, ‘세계 최초 2나노 시대 개막’으로 시장에 반향을 불러일으키겠다는 포부인 셈이다. 삼성·TSMC는 이보다 다소 늦은 2025년 2나노 진입을 목표로 삼고 있다.
올해 전세계 파운드리 생산 역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현재 미국, 일본 등에 건설 중인 주요 파운드리 공장이 완공되면 글로벌 파운드리 공급 능력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우선, 세계 파운드리 1위 대만 TSMC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건설하고 있는 파운드리 공장이 다음달 완공될 예정이다. 올해 말 12~28나노 기반 제품이 이곳에서 양산될 것으로 보인다. TSMC는 지금까지 일본에 3개의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4월 착공될 제2공장은 6나노급 공정을, 이후 지어질 제3공장은 3나노급 초미세 공정을 맡을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텍사스 테일러 공장 역시 올해 말 가동을 시작해 2025년 대량양산에 나설 방침이다. 양산될 제품은 3나노 2세대 또는 4나노로 첨단 공정 기반이 유력하다.
인텔 역시 현재 여러 대륙에 걸쳐 파운드리 공장 건설을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에는 앞서 32조원을 투자해 추가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4조원 가량을 지원한다. 독일 마그데부르크 등에도 300억유로(약 43조원)를 들여 반도체 공장 2곳을 추가로 짓고, 폴란드 브로츠와프에도 46억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도 애리조나 등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며 무서운 속도로 생산 능력을 늘리고 있다. 김민지 기자